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문화 찾기
인류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한국이 미래 인류에 기여할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효(孝)사상 일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에서 효문화는 고대 이후로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교 문화는 조선으로 넘어와 중심 가치로 ‘효’를 강조했다. 그 결과 ‘모든 행동의 근본(孝百行之本)’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한국의 특별한 정서 때문에 타 종교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이들의 정서와 결합해 대중에 파고들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모은중경’과 함께 설파했고, 기독교 역시 가족 중심의 효를 신앙과 연결해왔다. 유교는 효를 인(仁) 사상을 통해 더욱 발전시켰다.
유학을 사상의 근간으로 삼은 조선 시대의 경우, 효가 어떤 ‘진기한(quaint)’ 습관이 아닌 모든 생활을 지배하는 가치로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이 인(仁)의 사상 때문이다.
효는 인간이 지녀야 할 마음의 영역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을 서로 묶는 윤리의 핵심이었다. 효는 또한 개인 영역으로부터 공공 영역까지 확대되어 나라와 사회에 대한 윤리로까지 이어졌다. ‘충성’과 ‘공경’은 일종의 효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렇게 ‘효’라는 기본 질서를 토대로 사회를 안정되게 유지해나갔다. 물론 조선 중기 이후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친 면도 있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사회를 지탱하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18세기 중국의 지식인들은 한국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효문화를 부러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높이 평가했다. 질서 있고, 조화로운 사회의 틀이 너무도 견고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록들에서도 중국인들은 연장자와 조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공경하는 마음을 문명사회의 기준으로 여겼다.
그들이 특별히 한국의 효문화에 관심을 둔 이유는 이미 중국에서 개념으로만 남은 문화가 한국에서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과 같은 유교권인 중국에서는 공산혁명과 문화혁명 등을 겪으면서 가족 개념과 전통적인 효의식이 상당 부분 퇴조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고민하던 문제, 바로 해체되어 가는 전통 질서의 문제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한국에서의 전통적인 효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약해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의무처럼 인식은 하지만 그것에 대한 열성은 시대가 지날수록 약해진다.
나 역시 한국의 미래에서 효(孝)문화가 차지하게 될 가치에 대해 종종 언급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은 좀처럼 받지 못하고 있다.
바쁜 현대 사회나 유교 사상의 퇴색만을 탓할 수는 없다. 결과만을 놓고 볼 때 그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적인 갈등이 노인 혐오를 불렀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조선이 운명을 다하고 일제에 의한 통치를 거치면서 급격히 서구화한 데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이분법으로 세대를 갈라놓는 한국의 정치적인 후진성은 이미 상당 부분 공감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서구화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이는 서구의 전통에서 효문화가 없었거나 약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연 유럽은 동양과 같은 효의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사실 유럽의 전통에서 효문화는 동양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는다.
유럽의 효에 대한 기록들은 오래전 그리스 문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만날 수 있다. 그중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Cleobis and Biton)’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전하는 대표적인 유럽 효문화의 모범이다.
이들 형제에 관한 이야기는 아테네의 현인 ‘솔론’의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솔론이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손님으로 머물 당시, 클로이소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솔론이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 ‘텔로스’와 함께 예로 든 사람이 이들 형제였다.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는 아르고스에서 헤라 축제가 개최된다는 소식에 어머니를 소달구지에 태워 급히 신전으로 모셔야 했다. 그런데 수레를 끌 소들이 모두 들판에 나가고 없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들 형제는 어머니를 위해 멍에를 어깨에 메고 그녀가 탄 소달구지를 끌었다. 그리고 먼 거리를 달려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든 여정에 체력마저 바닥이 나, 축제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당시 아르고스 인들은 형제의 부모에 대한 마음에 감동해 이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까지 세웠다고 한다.
솔론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크로이소스는 섭섭함과 불쾌함을 느끼고 솔론을 내쳐버린다. 자신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솔론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복이란 권력과 재산, 명예 같은 것들이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그는 키루스에게 정복당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솔론이 말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유럽의 효문화가 단순히 의무를 넘어 자신에 행복을 주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 행복은 재산이나 권력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이들의 효문화는 종교와 결합해 체계적으로 변했다. 점차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행복은 사랑이 전제되고, 사랑의 전달 방식으로 효는 절대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유럽의 근대까지 여러 문명에서 보여주는 효문화는 솔론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행복까지 결부시키면서 강조하고 있다.
이들의 효에 대한 실천 방식에서도 적극적이고 합리적이다.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전달하기도 하지만 근대 유럽 사회로 넘어와 문서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점차 많아졌다. 느낌으로 아는 것과 표현한다는 것, 문서로 만든다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들의 문서는 상속이라는 문제가 개입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불효자방지법’이란 것이 등장했는데 일종의 유럽식 불효자방지법인 셈이다.
문서는 상속의 문제와 효의 문제가 하나의 줄기에서 마주하고 있다. 한국 전통의 개념에서는 이해가 어려운 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효와 상속문화가 현실적인 양상을 가지고 나타났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상속과 부양에 관해 자식과 은퇴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계약서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상속계약서처럼 세세한 부양 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지금이야 연금제도가 보편화하면서 사라지는 중이지만 중세시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유럽에서 유행처럼 퍼져 있었다.
한국적인 전통 효의 개념에서 조건 없는 효가 중시되지만, 유럽에서는 상속과의 결합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이 조건부 상속을 택한 것은 그들 나름의 현실적인 대처였다. 노후에 대한 불안과 적절한 배분, 재산을 둘러싼 갈등과 같은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로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비극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 비극은 효와 상속에서 자녀가 경계해야 할 것과 부모가 경계해야 할 것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리어왕은 세 딸을 두고 있다. 큰딸 고너릴, 둘째딸, 리건, 그리고 리어왕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막내딸 코딜리아다.
리어왕이 어느 날 자신의 권력과 영토, 재산을 세 딸에게 나누어주고 여생을 편하게 지내며 쉬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시험하기 위해 딸들에게 차례로 질문했다.
이에 큰딸과 작은딸은 온갖 입에 발린 말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막내인 코딜리아는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자식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고 이를 아버지도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해 “Nothing”라고 대답해버린다.
그런데 리어왕은 착한 셋째 딸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분노한다. 배신에 대한 분노로 셋째 딸에게 주려던 모든 것을 거짓 사랑을 외친 첫째와 둘째 딸에게 몽땅 나눠준다. 이것이 리어왕 이야기가 비극으로 남게 되는 사건의 시작이 되었다.
리어왕을 보다 보면 셰익스피어가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인간의 심리와 행태를 정확하고도 세밀하게 묘사해 내는 셰익스피어의 능력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메시지를 받게 된다.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효가 아닌 눈으로 보이는 효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다. 어쩌면 이를 위해 문서로라도 보장받으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비틀어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서에는 효와 상속이라는 교환 조건이 따르게 된다. 일종의 'Give and Take'가 명시되는 것이다. 효의 문제는 상속의 문제와 결부되어 안정적인 보장이 이루어진다고 믿게 된다.
유럽이 행복의 수단으로서 효에서 출발해 조건이 결합한 새로운 효문화가 되었다. 어쩌면 이런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와 사유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효는 조건보다는 당연한 인간의 도리라고 믿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 이런 가치가 힘을 잃고 심지어는 세대 간 갈등 양상마저 보인다. 그런데 이런 문화 상실은 한국 사회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효는 충(忠), 경(敬), 신(信) 등의 한국 사회 전체를 지탱하는 요소들의 뿌리라는 점이다. 한국이 모범국가로서 인정받아 왔고 미래에 새로운 사회 모델을 줄 수 있는 나라라는 찬사에는 이 모든 것들을 지탱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어왕의 비극은 효문화가 약해지는 한국에서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효라는 것이 겉으로 보이고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효문화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공감으로부터다. 공감하지 못하는 문화, 세대 간의 갈등은 서로 간의 권리만 추구하고 대결을 부른다.
사랑의 첫 출발은 가정이다. 그 사랑이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고 아름답게 만든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효는 형식과 보이는 전시만을 낳는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가족 간의 공감은 사회적 공감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서 가족의 해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제 자식들이 노부모를 모시는 일은 피하는 첫 번째 일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요양원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사회활동으로 인한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 수는 이해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또한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나머지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 젊은이도 나오고 있다. 어린 자녀가 학대로 목숨을 잃는 일도 종종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온다. 급격한 가족의 해체는 비극을 부르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가족의 해체가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효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만큼 충격도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사실 대안보다는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물론 그 질서의 밑바탕에는 효문화가 일정 부분 포함될 수밖에 없다.
원래의 한국 문화에서 효도라는 의미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강했다. 자신과 주위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절실하게 요구받는 것이 효문화였다. 지도층의 부정과 무기력에도 한국 사회가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효를 바탕으로 한 사회 질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한국, 나아가 물질과 정신 모든 부분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한국에게 효문화는 반드시 되살려야 할 전통이다. 그렇다고 효를 부활시켜 가족의 해체를 막는다는 것이 과거의 전통을 다시 끌어오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시대는 새로운 질서를 원한다. 그 질서를 위해서는 효를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효로부터 만들어지는 새로운 질서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효문화를 만들어 내려면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효의 전통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하려면 예술가나 작가와 같은 감성을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보통 시민들에게 이성을 회복시킬 지식인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작업은 일명 무슨 ‘위원회’나 ‘홍보’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동시에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편견과 왜곡, 오해를 걷어내야 한다.
그런 편견 가운데 먼저 탈피해야 할 것이 효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를 거쳐 변화했기 때문에 유교 전통에서 벗어나 성 중립적(gender neutral)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남아선호 사상과 제사에서 여성의 배제, 장자 상속의 원칙 등 수많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소외가 존재해왔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통을 개혁하는 데 실패하면 결과는 그 전통 자체의 소멸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여성이 배제되어 온 가정 내 의식에서부터 개혁해 나가야 한다.
유럽 사회가 이런 가정 내 여성에 대한 지위가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이 참고할만한 일부 사례는 찾을 수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개혁의 경우는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에서 다수 발견된다. 그들의 전통에서 후손들이 추앙해야 할 조상에는 여성이 포함돼야 하며 여성은 제사 등의 의식에 남성과 동등한 방식으로 참가해야 한다.
두 번째로 효는 도덕적인 의무뿐만 아니라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에 이르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효는 한국인들에게 진정한 정체성의 핵심이다. 비록 조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국인이란 사실은 조상들의 공헌이 낳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후손들에게 조상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찾고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어찌 보면 이는 프로이트적 접근법과 유사하다. 효는 가정과 사회, 국가의 질서를 세우는 데 있어 건설적인 심리학적 이해를 제공한다. 효를 통해 자녀의 삶에서 부모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이웃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1920년 베이징에서 한 해 동안 체류하며 강연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는 22년 출간된 『중국의 문제(The Problem of China)』에서 서구 국가에서 “어떤 개인의 충성심을 전투부대로 유도하는 애국주의”보다 유교의 효도가 정부를 운영하는 데 훨씬 바람직한 체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효는 개인의 영역과 국가를 연결하고 서로 조화롭게 통합하게 하는 철학의 가능성을 준다. 효문화는 지나치게 단순한 어떤 ‘이념’이 아니며, 군국주의로 쉽게 변질할 수 있는 ‘애국주의’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서양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가족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바로 효가 있어 한국이 제국주의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효에 의해 인간애가 넘치는 통치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