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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디 PADDY Dec 15. 2023

그의 명함에 관한 고찰

80mm, 40mm 그리고 5mm

햇빛은 부드럽고 바람은 시린 날이다. 그새 겨울은 찾아왔는지 강남의 한 카페 야외주차장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주차장 한가운데서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노을을 만끽하는 두 남자가 있다. 두 남자는 카페 앞에서,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장면1 ‘강남의 한 카페 야외주차장’


노을이 지는 풍경이 펼쳐진 주차장 한가운데서 두 남자가 대화 중이다. 


한 남자는 여유롭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다른 한 남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다소 긴장한 듯하다. 


A : (여유롭게 웃으며) 저 지난번에는 너무 놀랐다니까요? 다시 한 번 줘보실래요?

B : (명함을 건내며) 아 네, 여기요

A : (명함을 받아서) 아 이렇게 주는 게 아니고 (반대로 건내며) 상대가 유택님의 이름을바로 읽을 수 있게 이렇게 (반대로 건네며)


긴장해 보이는 B, A가 보여준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 본다. 


B : 네, 그럼 이렇게 건네고 제 이름과 소개하고...

A : 그렇죠! (많이 보았다는 듯이) 지난번에 명함을 상대방에게 그냥 건네시는 것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만약 비즈니스를 하신다면 큰일나요! 그리고 명함을 받으면 보고 바로 케이스에 넣는 게 아니라, 앉아 있는 유택님 오른쪽에 직급이나 위치 순으로 위아래로 직렬해서 놓은 다음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상대가 안 볼 때 그때 명함을 넣으면 됩니다. 

유택 :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아, 와 네, 이게 또 사회생활의 규칙이군요! 새롭게 배웠습니다. 


두 사람, 몇 번의 시늉을 연습하고는 카페안으로 들어간다. 

바람이 부드럽게 분다.


A : (손짓하며) 이제 들어갈까요? 

유택 : (빠르게 끄덕이며) 저는 아아요!


유택은 알겠다는 끄덕임과 함께 잠깐의 사색에 잠긴다. 두 남자는 방금 명함을 주고받은 듯한 어색하고 약간 긴장되는 시선을 애써 감추며, 색이 선명한 하얗고 새빨간 카페 건물로 천천히 사라졌다. 새빨간 카페는 주변의 회색진 거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동네에 구멍가게 같은 비디오대여점이 흔했던 2000년대 초,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5기 <암흑마왕의 대추적>를 빌려보았던 기억이 있다. 배가 불룩한 네모상자 가까이 눈을 가져다 대면 빨간, 초록, 파란색이 선명했던 브라운관 티비에서는 역시나 악당에 쫓고 쫓기는 짱구가족이 우당탕탕! 하며 스토리를 전개해 가고 있었다. 당시의 에피소드가 워낙 재밌어서 대부분이 기억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야 떠오른 장면은 암흑마왕의 수하들에게서 도망칠 때 하필 짱구아빠 신형만이 뜬금없이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이때 악당은 그들을 붙잡기는 커녕 명함교환은 비즈니스의 신성한 행위라며 교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곤 여느 클리셰처럼 서로의 명함이 상대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슬로우모션과 함께 교환이 끝나자마자 다시 우당탕탕 추격전이 시작된다. 


이렇게 명함 교환은 마치 비즈니스 축제와 같아서, 단순한 연락처 교환을 넘어선 더 깊은 소통이다.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는 서로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가는 시작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연결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로써 우리는 더 큰 사회 커뮤니티에 속해있음을 느끼게 되며,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연결을 느끼며 안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함의 사이즈는 가로 80mm, 세로 40mm 이내의 크기가 사용된다. 명함을 담는 케이스도 이에 맞춰 제작된다. 문득 생각해보니 명함은 무공이 분실술을 쓰면서 다양한 상대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그림자, 분신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인 나는 명함이 애초에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명함을 받기만 하고 줄 수가 없어서 민망함에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했기에 나는 나의 분신들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섹시한 예술을 하는 연출가’

첫 번째 명함에 적은 나의 소개였다. 


‘다각형을 확장하는 예술가’

이후 바꾼 지금 명함에는 이렇게 소개가 바뀌었다. 


회사에서 나누어 주는 일률적인 보통의 명함과는 달리 나만의 명함을 만든 다는 것은 마치 작은 캔버스에 큰 이야기를 그리는 예술가처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디자인과 강렬한 문구가 필수적이다. 이 작은 조각은 빈 도화지 위에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공간이자, 나의 욕망과 꿈이 살아숨쉬는 곳이다. 


때문에 명함을 만드는 선택과정은 그저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 작은 카드 하나에 담긴 말과 그림은 나만의 가치관과 목표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최소한의 글자와 최소한의 공간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나 자신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심오기 짝이 없다. 각각의 선과 공백, 배치는 나를 조각내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 나간다. 예술작품이라고 불릴 만한 명함은 상대방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자부심과 만족감을 선사한다.


따라서 명함은 나만의 작은 작품으로서 더 나아가 소통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상대방에게 나를 소개할 때, 명함은 나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따라서 누구에게 명함을 줄지 명함이 여러 개라면 어떤 것을 줄지 신중한 고민과 고려가 필요하다. 그림과 글자가 어우러진 명함은 상대방과의 연결을 위한 첫 번째 단추를 끼우는 것과도 같다. 만약 그 연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작은 예술작품은 더 큰 만족감을 안겨줄 것이다.


 대부분이 모르는 것이 있다. 명함을 디자인하고 인쇄를 하기 위해서는 명함사이즈에 5mm의 여백이 필요하다. 이 여백은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여백일까 되물을 필요가 있다. 한번 이 여백이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자. 5mm의 여백이 명함 디자인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요건이 아니라, 이 작은 여백은 디자인의 틀 안에서 우리가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마치 삶의 여유와 고요를 담아내는 작은 창문 같은 존재로, 그 틈사이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시절 목걸이 명찰을 차고 다니는 시절을 보냈다. 목걸이 명찰은 빈 종이나 천 따위에 자유롭게 손글씨나 타자로 이름을 써 보다 넓은 명찰의 여백이 우리와 함께했다. 하지만 목걸이 명찰이 이름으로 가득담긴 교복 명찰로, 사회의 명함으로 변화하면서 점점 좁아진 여백은 예리한 칼날과 차가운 사회로 인해 잘려나간우리 자신과의 소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명찰에서 명함으로 변화되며 사라진 여백은 디자인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씩 잘려나간 삶의 여유와 고요가 아니었을까? 


 두껍고, 까슬까슬한 다양한 종이명함을 만지고 있자니 느껴지는 미묘한 무게는 마치 고요한 밤에 내리는 눈처럼 차분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제는 명함의 종류가 많아진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명함을 공유해야 할지 하나의 고민된다. 첫 나를 떠난 분신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분신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명함을 만들면서 삶은 더 많은 책임과 의무로 채워지고 있는 듯하다. 미묘한 무게의 작은 짐은 살아가는 것에 관한 더 많은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스스로에 대한 탐험이기도 하다.


이제 명함은 나만의 삶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표현하는 여러 개의 창이 되었다. 그리고 삶의 무게를 수없이 쪼개어 함께 나르는 파트너가 된 것이다. 이 작은 무게는 내가 지닌 책임과 삶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삶의 조각들을 담은 명함을 나는 짊어 안고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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