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결핍과 성장을 고민하는 끄적임 (2)
엔트로피: 시스템의 무질서도 또는 불확실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적 개념
엔트로피는 시스템의 '무질서'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방을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자연스럽게 어질러지고 복잡해지는 것처럼, 세상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네겐트로피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상태를 정리하여 다시 질서 있게 만드는 힘을 말한다.
지금 우리의 삶은 엔트로피에 가까울까, 아니면 네겐트로피에 가까울까?
어쩌면 우리는 무질서를 자유라고 착각하며 살아오진 않았을까? 나 역시 그랬다. 정해진 기준 없이 살아가면서, 그것이 자유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무질서한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 감춰진 혼란을 마주하려 한다.
지난 글에서 결핍과 사람 간의 연결에 대해 얘기했었다. 주변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는 성장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물들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내 주변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고 살아가는가?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그 고민의 결과는 무엇인가?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했는가? 나는 이 선택의 기준이 삶의 ‘방향성’, 우리가 살아가며 가져야 하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니 방향성이니, 복잡해 보이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를 어떠한 선택지로 이끄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내 삶의 기준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본능을 따르는 것’이 삶의 철학인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물론, "내 삶의 철학은 본능을 따르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삶의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능력을 인정받고, 남들이 보기에 멋있어 보일만한 일. 당장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 도파민을 자극하는 콘텐츠.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하루들.
평범해 보이는 이 삶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한 이 삶이 — 이제는 진정한 자유가 아님을 깨달았다.
앞서 말했던 내용은 내가 살았던 삶 그 자체였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매니징할 줄 몰라서, 비는 시간마다 동아리, 학회, 사람들과의 만남, 과제, 팀플 등의 일정을 욱여넣기 바빴다. 그 와중에도 닌텐도 게임은 꼭 해야 했기에 늘 새벽 늦게 잠들었고, 다음 날 수업 시간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어났다.
계획 없이 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모든 욱여넣음을 '계획적으로' 해냈기에, 그 삶이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기 더 어려웠다. 이제는 안다. 내가 그토록 바쁘게 계획했던 일들이, 사실은 기준도 목표도 없이 뒤죽박죽 선택한 것들이었다는 걸. 그야말로 '계획적인 무질서'였다.
무질서한 삶은 순간의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삶의 목적과 방향을 흐트러뜨린다. 물론 때로는 무질서가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질서와 균형 잡힌 기준이 오히려 삶을 더 자유롭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질서가 주는 안정감은 내가 원하는 목표로 향하는 길을 더욱 선명하게 해준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지,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방종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준 있는 삶은 어떨까?
삶의 기준을 세우기 이전의 나는 항상 어딘가 불안했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명확한 기준과 방향성을 설정한 후에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고, 삶은 이전보다 더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이것은 단순히 불필요한 일을 줄이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차원이 아니다. (물론, 나는 추구하게 된 삶을 살기 위해서 관계와 불필요한 물건이 주는 피곤함을 벗어던지긴 했다.) 삶의 방향이 확실해질수록 나라는 존재가 뚜렷해지고 선택이 명확해진다. 각 선택이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조화롭게 나아간다.
삶을 단순히 하다보면, 나다움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된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는 꿈을 꾸면서, 결국 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좌절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리 컨설턴트로 유명한 '곤도 마리에'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이건 단순히 소유에 대한 말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에 적용이 되는 말인 것 같다. 관계도 내 집을 채우고 있는 물건도, 생각들도. 잘 들여다보면 쓸 데 없지만 붙잡고 있는 것들이 있다. 곤도 마리에가 말 하는 '설렘'이, 결국 내 삶의 기준으로 바라봤을 때 알맞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인 듯 하다. 명확한 기준 안에서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것들이 알맞은가 고민할 때, 필요한 것만 남고 더욱 단순하고 명료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단순함을 추구한다.
아직은 나의 모든 생각과 깨달음을 온전히 전달하기엔 어려움이 많이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내 삶을 100%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는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조금씩 실패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내 삶의 질서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은 그런 고민의 작은 흔적이자, 삶을 살아내는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