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은 일요일 아침, 아이와 함께 블럭방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블럭방에 간다고 하니 스스로 옷도 입고 밥도 잘 먹고 일찌감치 신발 신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아이다. 53개월, 만 5세가 채 되지 않은 아이가 레고블록 만들기 쉽지는 않을 터, 하지만 좋아하는 몬스터트럭을 만들고 싶다며 이야기하며 신나게 블럭방으로 이동한다. 혹시 아이가 레고에 집중하면 엄마인 나도 시간이 조금 주어질까 해서 노트북을 챙겼다.
아이는 블록 조각이 많은 대형 레고를 골랐다. 여러 개의 조각들 중 필요한 조각을 찾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찾는 것을 같이 도와주고 그림에 맞게 끼우는 것을 아이가 직접 하도록 했다. 아직은 아이가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하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진 못하는 듯하다. 함께 할 때 더 즐겁게 하고 이야기하며 만들어가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이따금씩 엄마는 노트북을 가져왔으니 해야 할 일이 떠오른다. 언제 노트북을 켤 수 있을까 눈치를 보곤 했다.
결국 레고 조각이 워낙 많아서함께 조립했다. 레고 블록이 더 남아있었지만 몬스터트럭 하나를 완성했으니 이어서 비즈 꽂기로 시선을 환기시키려 했다. 비즈 꽂기는 단순한 과정이라 아이 혼자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아이는 무지개 색깔의 칼 모양의 도안을 골랐다. 나는 도안에 맞는 무지개 색상을 책상에 놓아주고 그제야 옆자리에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마음처럼 비즈 꽂기에 집중하지 않았다. 몇 번 하더니 이내 모르겠다며 투정을 부렸고, 색상들이 나누어진 비즈들을 섞기 시작했다. 아이의 불만 표현이 느껴졌다. 한두 번은 블럭방 선생님이 봐주시긴 했지만 아이는 그것으로 만족이 되지 않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도, 잔뜩 예민해져서 아이에게 섞어놓은 비즈를 분리해서 다시 넣으라고 굳은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하나씩 해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 순간 아이의 불만의 원인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는 비즈 꽂기도 엄마랑 하고 싶었을 터. 잔뜩 뾰로통해진 아이에게 훈육이랍시고 성내기만 한 나의 모습이 느껴졌다. '아, 지금은 내가 일을 할 때는 아니구나' 싶어서 노트북을 덮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라봉아, 이거(비즈 꽂기) 계속할래?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니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곤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혹시 엄마랑 같이 하면 할 수 있을까? 엄마랑 같이 해보는 것은 어때?"라고 물어보니 끄덕이며 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다. 아이는 처음부터 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다. 엄마랑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을 투정 부리듯 표현한 거다. 그리고선 말을 이어갔다. "라봉아, 엄마가 할 일이 있어서 노트북을 켰어. 그런데 라봉이가 엄마랑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면 엄마도 이 일을 하지 않고 노트북을 덮었을 거야. 그러니 다음에는 엄마한테 먼저 얘기해 줄 수 있을까?"라고 표현하지 못한 그 마음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 아이도 마음이 괜찮아졌는지 밝게 대답해 주었고, 자리를 고쳐 앉고 같이 비즈 꽂기를 시작한다. 물론 나도 아이에게 엄마의 일이 있으니 먼저 혼자 해보는 것은 어떤지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았겠다. 아무런 소통 없이 노트북을 켜버린 엄마인 나도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다소 뾰로통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엄마랑 블럭방에 갔는데, 엄마는 일만 하고 나한테 화만 냈어'라는 기억보다는 '엄마랑 칼을 멋지게 만들었어'라는 기억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이더라도 긍정적으로 해결한 경험이 많아져야 함을 느낀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훈련이다.
아이는 비즈 통에 담긴 각 색깔을 섞이지 않게 스스로 구분하고, 필요한 만큼 조금씩 엄마에게도 덜어주며 칼 만들기를 이끌어갔다. 빨간색 다음 주황색, 주황색 다음 노란색, 그렇게 보라색을 꽂을 때는 거의 다 했다며 뒷정리를 하고 있더라. 엄마랑 함께하니 신난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예쁜 고리를 매달아 완성했다.
아이는 참 사랑스럽다. 그렇지 못한 어른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 행동을 일으킬 뿐. 나도 아이와 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이따금씩 다른 생각을 하느라 아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의 시간뿐만 아니라 아이의 시간,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이 더 값진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그 마음에 충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