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둘 키우다가 우물밖으로 나온 워킹맘 도전기
첫째 아이가 다녔던 미국학교 앞에는 소가 뛰어다니고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아이를 태워줄 때마다 소가 어디에서 풀을 뜯어먹는지 확인하곤 했어요. 그 학교에는 동양인이 없어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한국인이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오다 보니 언어의 장벽은 높았어요.
미국 엄마들의 커뮤니티에 끼어 들어가지 못했고, 이방인으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니 외롭거나 슬프지는 않았어요. 단지 언어가 많이 불편했어요.
학교에서 메시지가 오면, 식은땀이 났고 번역기 돌리거나 챗지피티한테 물어보기 바빴어요. 미국 문화를 모르다 보니 모든 게 새로웠습니다.
그러던 찰나 첫째 아이에게 한 사건이 일어났어요. 학교에서 물놀이하던 날, 오후 12시가 넘어 전화가 왔었어요. 첫째 아이 혼자 교실에 남아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실 전화로는 잘 못 알아듣기도 했고, 아이에게 별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을 했어요.
그날 아이에게 물어보니, 물놀이를 하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왔는데 반에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당황에서 선생님들이 올 때까지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지나 선생님들은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서 교실에 있는 아이를 찾았습니다. 아이를 찾으러 학교에 갔을 때 아이의 옷은 하나도 젖지 않은 채 깨끗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있었을 아이의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어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어떻게 아이를 잊어버릴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선생님들이 실수를 한 것이고,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얘기를 했지만 사실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놀이 다음날이 바로 졸업식이었고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은 끝이 났습니다. 이 동네에 살고 있으면 둘째도 이 학교에 다녀야 되고 어쩌면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학교에 더 이상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양인이 많이 사는 좋은 학군지로 이사를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국립학교 같은 경우 학교 등급이 1~10이 있어요. 10이 가장 좋은 점수이며, 예전에 살던 곳은 초등학교가 5였습니다. 지금은 9인 데로 옮겼으며 한 반에 한국인이 4~5명 있을 정도로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학교 부담임 선생님이 2세이다 보니, 아이는 빠르게 학교에 적응했습니다.
학군 지는 인기가 많다 보니, 집값이 비쌌습니다. 비싼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에는 한 명의 월급으로는 부족해 같이 맞벌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에서 남편의 그늘 안에 있다 보니, 혼자 스스로 하기보다는 항상 의존형을 살았어요. 처음에는 주유도 남편이 다 했습니다. 미국에서의 나는 0.5인분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어요. 한국에서처럼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자립형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우물밖의 도전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