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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15. 2019

片片

2019.4.15.


고양이는 꼭 바쁜 날에만 내 품으로 파고든다. 새벽 6시 기상을 목표로 알람을 맞춰두지만 정작 눈을 뜨는 것은 마지노선으로 맞춰둔 두 번째 6시 15분 알람이다. 6시 15분에 이불 밖으로 팔을 뻗어 기지개를 펴자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고양이가 쫓아와서는 이불을 들추라고 갸르랑거리면서 내 얼굴에 이마를 비벼댔다. 느지막이 일어나도 됐던 일요일 아침엔 나를 거들떠도 안 보더니 꼭 출근하는 날 시간도 없는 아침에 애교를 부린다. 차라리 6시에 오든지. 모든 일이 돌아가는 게 그런 것처럼 기회가 올 때는 내가 바쁘고 내가 여유로울 때는 기회가 안 온다. 고양이는 자기를 조금 쓰다듬다가 매몰차게 일어나 버린 내 발목을 막 때렸다.


미용실에 안 간지 과장을 좀 보태서 1년이 다 되어간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잠을 자고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미용실까지 찾아가고 또 못생겨보이는(사실은 내 본래 모습) 거울 앞에 한참동안 앉아있어야 한다는 게 아까워서다. 또 다른 이유는 꼭 하고싶은 머리 스타일이 있지만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가수 김완선의 폭탄머리 같은 것을 하고 싶다. 이미 세 차례 시도해봤지만 “어머, 고객님은 숱이 너무 많아서 그 머리하면 안돼요”라는 원천봉쇄, 알겠다고 해놓고는 미용사가 지레 겁먹고 소심하게 볶은 이도저도 아닌 머리,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열대우림이 되어버린 두피 등의 결과만 낳았다. 여튼 그런저런 이유로 끊임없이 머리를 기르기만 하고 있다. 보는 사람마다 머리가 정말 많이 길었다고 한마디씩 한다. 지저분하다는 말을 차마 못해서 거기까지만 말하는 것 같다. 또 문제는 머리를 말리는 데 20분이나 걸린다는 점이다. 이 머리만 아니었으면 아침 그 20분동안 고양이를 좀 쓰다듬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항철도를 기다리느라 줄을 서 있었는데 대각선 앞에 선 어떤 여성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작은 키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어울리지 않는 남성용 백팩을 메고 있었다. (보려고 본 것은 아니었으나) 스마트폰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자 각종 언론사의 어플이 깔려있는 것이 보였다. 배경화면에 위젯으로 설정한 캘린더에는 온갖 약속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늘 마음이 급하고 언제나 편안하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온 몸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는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카카오톡 어플을 켰다. 어쩌다 이름까지 보게 됐는데 궁금해서 네이버에 그 이름을 넣어 ooo 기자라고 검색을 했다. 역시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출근길 지옥철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djfkdkfsidfjksdlfkjweojfkdjkfjdkfjew2398478987233ior@$#@KTJEKFJIDFZKdfjksdjfkeoifowjif084789ri302결8d9f8d90sfid0s98f9d0sfi9isdfbd란이.p239r030f[q=-=e021i9더9098fkfjkljfjsdkfhwiejkljgkdjsfkjw대92u39489ut980시발2039489023r908riojkjdkfjklwejiofjlkxjmfkbjkfjp3ou9023utjkdjklfj;저38710928   -ueiojDKLDJK. 그렇다.


대학 다닐 때 들었던 수업 중에 ‘한국현대희곡론’이라는 게 있었다. 선생님은 4-5명으로 한 조를 짜서 ‘훌륭한’ 희곡 작품의 한 장면 씩을 직접 연기하도록 시켰다. 우리 조가 선택한 것은 오태석 연출의 ‘부자유친’이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고 영조가 불같이 화를 내고 의뭉스러운 혜경궁 홍씨는 뒤에 서서 변사처럼 상황 해설을 한다. (나는 혜경궁 홍씨였다.) 그 수업에서는 오태석 뿐 아니라 이윤택도 훌륭한 희곡 작가라고 배웠다. 그 사람들의 작품 세계와 연도별 작품 리스트까지 통째로 외워서 시험을 봤다. 지금 그 훌륭한 오태석과 이윤택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성추문이 가장 먼저 나온다. 고은도 마찬가지다. ‘한남문학’이라고 검색을 하면 주류에서 훌륭하다고 가르쳤던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튀어나온다. 일찍이 한국문학이 극단적인 남성 중심 문학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고 자부했고, 내 졸업논문도 폭력적이고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고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남성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도, 그렇게 무의식중에 세뇌당해서 이상한지도 몰랐던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대체 뭘 배우고 또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결국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름을 걸고 발표한 작품이 아니라 누가 썼는지 차마 밝힐 수 없었던 고려가요나 경기민요, 설화같은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생각할 때마다 먹먹해지는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 바리데기 설화다. 아들을 바랐는데 일곱째 역시 딸이라는 이유로 젖먹이를 유기치사하려 한 부부. 본인이 죽을 병이 걸리자 내다버린 막내딸보고 저승에 내려가 약꽃을 구해오라고 시키는 아버지. 아버지를 살려낸 바리공주를 효녀라고 칭송하는 사람들. 바리공주는 왜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살리려고 했을까. 여섯 딸들이 자신을 모른척 할 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이 자기를 떠받들 때 바리공주는 달가웠을까. 바리 설화를 들으며 괴상한 효도를 강요받고 자란 딸들은 모두 나처럼 화가 났을까. 이번 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전시될 ‘이별의 공동체’는 한국에서 태어났다가 덴마크로 입양된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이 바리 설화를 모티프로 삼아 만든, 버려진 딸이 버려진 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다. 우리 회사에서는 내 동기 ㄱㅁ 언니가 베니스에 취재를 간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제목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이는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공교롭게도 나에게 파친코를 꼭 읽어보라고 권해줬던 사람도 ㄱㅁ 언니다.


어제 시작한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라는 책에는 20년 전 싸구려 항공기를 탔다가 본 장면을 ‘노트 북’에 정리해 뒀더니 20년 후 소설의 소재로 쓰이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당장 긴 소설을 쓸 용기가 없어서 차선으로 선택한 게 잡다한 생각들을 이렇게 정리해 두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맛 좋게 숙성되는 간장이나 술처럼 번뜩이는 영감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지금도 2014년 즈음에 정리해뒀던 글을 다시 보면 그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살처럼 붙는 진기한 경험을 한다. 조각조각 생각을 정리하는 일의 또 다른 장점은 구어로만 쓰던 단어를 문어로 쓰기 위해 사전을 검색해보게 됐다는 점이다. 이 글 두 번째 문장에 쓴 ‘마지노선’이라는 단어가 문득 궁금해져서 검색을 했다. 당연히 이게 한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1927년 프랑스가 라인 강을 따라 독일과의 국경에 쌓은 요새선이 바로 Maginot Line이었다! 마지노는 육군 장군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런것도 몰랐던 나는 온전한 글을 쓰기에 한참 멀었던 것이다!

5호선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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