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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15. 2019

보드게임

2018.9.18.

나는 게임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보드게임 카페에 들락거리게 한 것은 팔할 아니 십할(발음 주의)이 T였다. 그러고보면 사족을 못 쓰게 된 방탈출도 T 때문에 알게 됐다.


T는 오늘 진지하게

“재미 없는 곳에만 데려가서 미안해” 라고 말했다.

“보드게임 하러 가자”라고 하면 늘 속으로는 ‘또?’ 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지만 정작 게임을 하면 더 좋아하는 것은 나다.

T는 너드의 대명사 답게 모든 게임을 곧잘 하는데, 지금까지 딱 5번 정도 이겨봤나. 그랬는데도 여튼 재밌다.


이 기회에 T와 했던 보드 게임들을 상기해보려 한다.


나와 T가 주로 갔던 곳은 강남역 근처 데블다이스.

이 곳에 자주 갔는데, 오늘은 정처없이 걷다가 2호점을 발견했다.

2호점이 더 깨끗하고 창문 밖 풍경도 더 좋았다. 여자화장실 칸이 두 개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듀얼이 없는 게 유일한 흠. 다음엔 내가 직접 들고 가도 되는지 물어봐야겠다. (집에 구비해뒀으나 듀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무한 방치 중)


1. 듀얼

내가 이기고 있다.

내 기준 재미있는 보드게임 top 2에 드는 듀얼.

엄청 어렵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룰을 한 번만 빡세게 외우면 정말 재밌다.

처음 데블다이스에 가서 직원 분께 듀얼 플레이 방법을 설명해달라고 하니 “이거 너무 어려운데, 설명만 30분 걸릴 거예요”라고 하셨다.

심지어 그 가게에 듀얼 룰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뿐이었다.

그럼에도 호기롭게 “네, 해 주세요”라고 대답했고, 그 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해 줬고, 지금의 듀얼 러버를 탄생시키셨음.


이겼지롱

T는 정말 못하는 게임이 없고, 특히 전략 게임에 강해서 이런 게임을 하면 10번에 9번 내가 진다.

그러나 듀얼을 할 땐 꽤 이겼던듯. ㅎ


2. 체스

T는 나에게 어플까지 깔게 했다.

오프라인 체스판은 사진을 찍어둔 게 없어서 어플 화면 캡쳐로 갈음.

이건 아마 T의 최애 게임인 듯하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처음 체스를 두고, 커서는 동생과 종종 체스를 뒀다는 T는 그간 체스 같이 둘 사람이 없어서 나에게 룰을 반강제로 가르쳤다.

워낙 고전 게임이니 룰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즐겁게 배웠는데, 아니 체스는 우연으로라도 T를 이길 확률이 없어서 순식간에 싫어졌다.

체스 러버 T는 심지어 강남역 인형뽑기가게 ‘못된강아지’에서 해머 치기 게임을 해서 체스 판을 뽑아다가 선물로 줬다.

그날 둘 다 너드처럼 사람 득실대는 스타벅스에 앉아서 체스를 뒀다. 부끄러운 기억.

그런데 정작 게임을 하고 있을 때는 뭔가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같은 서양 문화가 물씬 느껴지는 것 같아 재밌기도.


3. 임호텝

이집트 느낌

저번에 처음 시도했던 임호텝.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이집트가 배경이다.

특히 배로 직접 스톤을 옮기는 게 귀엽다. 사실 그냥 손으로 정육면체를 쌓아도 되는데 굳이 배에 스톤을 실어놓고 해당 항구에 파인 홈에 배를 정박한 후 짐을 내린다.

하지만 역동적이지는 않았다.


4. 사그라다

또 졌어

이번에 처음 해 본 사그라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예쁜 게임이라고 해서 했는데 파란 주사위와 초록 주사위가 구분이 안 됐다. 청록색맹?

T가 자꾸 color blind라고 놀리는데 진심으로 걱정됐다.

그냥 그랬다. 성전이라는 게임 이름만 예쁜 느낌.


5. 카르카손

앙증맞지만 장황한 지도

나의 최애 듀얼의 위상을 위협하는 새 게임 카르카손 등장.

각 카드를 어떻게 이어도 그림이 되게 만들어진 게 대단하다. 굉장히 오래된 게임이라고 하는데, 역시 복잡한 룰이 있는 것보다 간단한 게 최고다. simple is the best.

지도 위에 올려놓는 말의 모양이 사람인데 그것도 귀여워.


6. 아줄

사진이 없다.

스페인 전통 타일같이 생긴 것들을 이용하는 게임인데 앙증맞게 예쁘다. 나름 재미.


7. 셜록13

사람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솔직히 두 명이서 하기엔 너무 쉽고 금방 끝난다.

T는 너무 재미없다고 했는데 난 그래도 재밌었다.

영드 셜록의 ‘아이린 애들러’에게 빠진 후 아이린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흥분됨....


8. 로스트 시티

어떤 게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로스트시티... 미안


9. ...?

뭐 많이 했는데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내 기준 순위

1. 카르카손 or 듀얼 (아직도 판결을 못 내렸다)

3. 셜록13 (????)

4. 아줄

5. 체스

6. 사그라다

7. 임호텝

강남대로 뷰

데블다이스 2호점에서 보이는 최고의 뷰.

1호점에서 듀얼 설명해 주셨던 직원 분이 언젠가부터 안 보여서 좀 아쉬웠는데 여기 계셨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한 것을 넘어, 두 번째 방문 때 “듀얼 아직 없죠”라고 물어봤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인 후 따끈따끈한 듀얼 새 제품을 우리 테이블 위에 턱하니 올려둬주셨다. 듀얼을 찾는 유일한 손님인 우리 테이블을 위해 해외 직구를 하셨다고 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늘 먹던걸로”라고 말하면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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