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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May 29. 2019

우로보로스

2019.5.29.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대부분의 사람이 죽기 전에 온 몸에 이 곳 저 곳 구멍을 뚫는다.
사랑했던 외할머니가 그랬고 큰 삼촌이 그랬고 외삼촌이 그랬고 사촌오빠도 그랬다.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신체에 영양분을 주입하기 위해 관을 삽입하고 대소변을 가리기 위해 구멍을 뚫고 차오르는 복수를 빼내려고 또 기다란 관을 꽂아둔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더욱 한발짝 떼기도 힘들게 된다. 거미줄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그런 신세가 된다.


오늘 할아버지의 치료에 관한 가장 큰 이슈도 할아버지 몸에 또 하나의 구멍을 뚫을 것인가 하는 일이었다.

이미 복수를 빼내기 위해 배에 커다란 구멍을 낸 할아버지는 손목 혈관 안으로 심장 근처까지 깊숙이 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두려워했다. 어차피 고칠 수 없는 거라면 그냥 두자고 했다. 하지만 자식 된 아빠는 그 구멍을 뚫어서라도 자꾸만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하는 할아버지에게 영양제를 투입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고민은 연명치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뚫은 구멍으로 넣는 것은 단순히 할아버지가 밥을 안 먹기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미 많은 가족 구성원들을 병원에서 잃어 본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우리 가족은 연명치료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데까지 어느 정도 합의를 봤다. 그러면 그 구멍도 뚫지 말아야 할텐데 그럼 또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더 이상 돈을 뽑아 먹을 방법이 없다)며 병실을 비우라고 눈치 줄 게 빤했다.


암이 폐까지 퍼져 자꾸만 등이 아프다고 하는 할아버지를 어디로 모셔야 하나. 중환자실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라며 치를 떠셨다던데 요양병원에 가자고 하면 아마 할아버지 성격에 난리가 날 거다. 그럼 집으로 모시나.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역시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마저 아파질 수 있고,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병사임에도 경찰 조사에 뭐에 다 받아야 한다고 한다. 생각치도 못했던 이야기에 좀 놀랐다. 살던 집에서 죽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 같은데 그 자연스러운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남은 가족들이 조사를 받는다니. 사람의 죽음이 병원에 누워 온 몸에 구멍을 뚫고 힘없이 죽어가는 것 아니면 요양병원이나 중환자실 같은 데서 고려장 비스무리한 기분을 느끼며 죽어가는 것이 옳은 절차가 됐다.


자식들은 할아버지가 대화를 듣지 못하는 보호자 대기실 텔레비전 앞에서 진지하게 논의를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자꾸만 쳇바퀴 돌았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한 사람의 죽음의 방향을 대신 정하는 일은 너무나 못할 짓이었다. 결국엔 할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간과 폐와 신장이 그냥 안 좋은 게 아니라 암이 전이된 거고, 암은 기수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오래 됐고, 그 연세에는 절제술과 항암치료가 모두 불가능할 것이니 어떻게 하시는 게 좋겠어요 라고 물어보자고. 그러더니 모두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게 됐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만큼 결정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하는 게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이미 본인이 암에 걸렸다는 것과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걸 눈치로 다 알고 계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눈치로 알고 있는 것과, 누군가가 확정을 내려 말을 해 주는 것은 확연히 다를텐데 할아버지는 그걸 견뎌낼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떨까. 내 생각엔, 할아버지가 "이제 나에게 솔직히 말해다오" 하기 전까지 우리 모두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면. 병원에서 더 이상 공간 차지하지 말고 어디로든 가시라 하면 어쩌지. 이렇게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미웠다. 어린 내 눈에 할아버지는 늘 큰소리만 치는 사람이었다. 술에 취해 시뻘개진 얼굴로 고함을 치며 내 이름을 불렀다. 할아버지는 장손이 예뻐서 그랬겠지만 나는 무서웠다.


결정적인 일은 중학생 때 일어났다. 주말에 할아버지 댁에 들렀다가 우리 집에 돌아가려고 짐을 챙기는 엄마와 나의 면전에서 할아버지는 충격적인 말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쟤가 고추 달고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아!"

눈물보다는 화가 났다. 할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섞인 애정마저 없어졌던 순간이 그 때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도 시집 가면 그만이라고 했다. 국문과에 들어갔다고 하자 의대 법대 아니면 쓸모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동네 친구들에게 손녀가 서울대 출신에 기자를 하고 있다고 엄청 자랑을 하셨단다. 할아버지 당신 딴에는 쑥스러웠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냥 그걸 말로 해 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 내가 할아버지를 미워하며 10여 년을 보내는 일은 없었을텐데.


병실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너무 아파서 앓느라 내 인사도 못 받았다. 그러다 진통제 덕에 조금 괴로움이 가시자 잔뜩 흐려진 회색 눈동자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참을 보다가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입을 열었다.

"가인아. 할아버지가 아파서 우짜노."


할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정신이 멀쩡하실 때 빨리 뵈러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눈물이 안 났다. 나이가 워낙 많으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많은 가족들의 죽음을 봐 와서 어쩌면 누군가를 보내는 일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나를 나쁜 손녀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왈칵 눈물이 나오려 했다. 호랑이 같았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 만큼 살았다고 말은 하면서도 또 막상 그렇지만은 않은 한 사람이 하나뿐인 친손자에게 너무 아프다며 솔직하고 약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여자라서 싫다고 했던 할아버지는 그래도 더 살면서 손녀를 더 보고싶다고 뒤늦게 고백하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할아버지 앞에서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참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자꾸만 눈물을 훔쳐내는 회색 흐린 눈만 쳐다봤다. 엄마가 다른 말을 시작해 할아버지의 시선을 돌려놓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 말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다.


병실에서 나갈 때 엄마와 아빠는 자꾸만 나더러 할아버지한테 인사하고 가자고 했다. 안녕히 계세요 라든지 저 갈게요 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진짜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그냥 또 올게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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