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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16. 2019

당신, 외롭지

2018.11.5.

그 사람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을 주고받는다.


오늘은 점심 즈음 페이스톡이 걸려왔다. 그 쪽의 시각은 일요일 저녁. 그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호텔 방에서 럼주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도착한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시차 적응을 못해 힘들다고 유리잔에 레드불을 따라서 마셔가면서.

우리의 통화와 메시지는 맥락이 없다. 들으면 좋은 목소리와 보면 좋은 얼굴만 가득한 느낌이다. 할 말도 딱히 없다. 가끔은 내 언어 실력이 부족해 하고 싶은 말을 못 할 때도 있지만 그냥 말해봤자 시답잖은 이야기, 시시콜콜한 하루 이야기가 전부다.

손바닥만한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띄워놓고 노래를 부르고 고개를 까딱이고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틈틈이 찾아오는 적막을 견디는 우리. 며칠 깎지 못했다는 그 사람의 수염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이 연락을 놓지 못하는 게 그 사람이나 나나 외로워서 그러는 거구나’ 하는 게 갑자기 느껴졌다.

그 사람한테 “당신 외롭지” 하고 물어봤다. 그러자 늘 밝은 그 사람이 너무나 안 어울리는 슬픈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못했다. 꽤 오래 나를 붙잡아두고 있는 이 무기력함의 이유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타지에서 나를 만난 그 사람은 또 다른 타지에 가서도 나를 찾는다. 그나마 우리 둘 모두에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둘 중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외로워지면 이 상황이 끝나버리는 건가 싶다. 나는 이 관계가 소중하지만 동시에 의존하지 않게 되기를 늘 바란다. 그 사람도 항상 나에게 “행복해 져야해”라고 말하지만 그 행복 안에 그 사람 자신은 없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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