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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17. 2019

입사 동기와 친구 사이: 직장 동료와의 우정은 존재할까

2019.4.17.

나, 정말로 퇴사할 거야.


퇴사를 할 거라는 말을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 할 때가 있었다. (실제로 밥은 하루에 세 번밖에 안 먹으므로)


잦은 퇴사 선언은 결심과 실행으로까지 이어졌다. 회사에서 받은 고물 노트북도 반납했다. 매일 어깨가 부서져라 메고 다니던 노트북을 돌려주고 나니 진짜 회사와 연을 끊게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 홀가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잘하는 걸까, 나는 과연 얼마만에 후회하게 될까 심란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동기 ㅊ이 곧바로 전화를 했다. 정말 그만둘 거라고 내 몫까지 잘 다니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는데 그 때부터 ㅊ의 폭탄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ㅊ은 이 회사에서 인턴시절부터 함께한 동기였다. 같은 기수로 인턴을 한 것도 모자라 입사도 같은 해에 했다. 나이도 같았다. 나는 여자 나이로 쳐도 어릴 때 입사했다는 소리를 듣는데 남자인 ㅊ이 스물 다섯에 입사를 했으니 두 동갑내기가 입사 동기가 된 것은 참 흔치 않은 인연이었다.


ㅊ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ㅊ과 나는 인턴 합격 후 첫 회식 자리에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ㅊ이 내게 처음 건넨 말은 "문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국문학 전공을 했다는 걸 안 뒤부터 계속 문학에 대해 함께 논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묻기에 나도 나름 진지하게 대답을 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뭐 이런 이상한 애가 다 있나' 하고 금방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그 ㅊ과 내가 둘도 없는 인턴 동기 겸 입사 동기까지 된 것이다. 인턴 동기 중 함께 회사에 들어온 것은 ㅊ이 유일했다.


야. 나 너 때문에 이 회사 들어왔단말이야. 너 그만두면 나도 그만둘거야.


뛰어난 연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간절하게 울먹거리는 ㅊ의 목소리와,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폭탄 전화는 여러 번의 퇴사 고민을 접은 데에 어느 정도 중요한 작용을 했다. 초기화 당하기 직전의 노트북을 도로 받아오자 ㅊ은 이제부터 내 발제와 기사를 다 대신 줄테니(안 줬다) 3년만 같이 버티자고 했다. 업계 안이든 밖이든 통상적으로 경력 인정이 되는 3년만 다니자고. 그리고 동시에 사직서를 던지자고. 우리는 달력에 3년째 되는 입사일인 11월 5일을 동그라미 쳐두고 그 날만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ㅊ과는 같은 부서 같은 팀 발령도 받았었다. (이름 빼고 다 똑같다며 재미로 사령장까지 바꿔 들고 왔었다.) 같은 출입처 기자실이나 근처 카페에 앉아서 퇴사 꿈을 꾸며 히히덕거린 것이 내 회사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다. ㅊ과는 가끔 퇴사 후 동업 아이템까지 상의했다. 둘 다 회사 밖에서의 관계 유지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거다.


ㅊ과는 3년이 아니라 13년을 알고 지낸 것 같았다. 회사가 아니라 학교에서 만난 친구 같았다. 회사에서 아무리 구린 일이 있어도 ㅊ이 내 동기로 있는 한 뭐든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오래 갈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이 동기는 1년 전쯤 퇴사했다. 다음은 동기의 퇴사 전 마지막 말이다.


내가 그 때 너 퇴사하지 말라고 붙잡아서 정말 미안해. 안녕.

ㅊ이 떠난 후 무척 친해진 동기 ㅂ과도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했었다. 한 학기(회사에서도 6개월을 한 학기라고 한다)에 한 번씩 있는 부서 엠티에서 술을 조금 마신 선배들은 진실게임을 하자고 했다. 성별이 다른 동기들 사이의 비현실적인 러브라인 만드는 걸 좋아하는 선배들은 돌아가던 소주병 입구가 나를 가리키자 기다렸다는듯이 짓궂게 물었다.


“트윈픽스의 빗치에게 ㅂ이란?”


순간 고민이 됐다. 저 사람과 나는 친구인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에 급히 답을 찾기 위해 ㅂ의 눈을 한참 들여다봤는데 ㅂ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2-3초 정도 지나자 머릿속에 퍼뜩 결론이 났다.


퇴사 후에도 연락하고 지낼 것 같은 사람?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내가 말해놓고도 참 적확한 말이라는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 있다. 이 말이 그랬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게 ‘친구’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는 것이다. 친구였으면 그냥 “친구예요”라고 말했을텐데. 굳이 저렇게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 사이라니. 밸도 없이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하는, 남은 동기 중 제일 친한 동기임에도.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타사 동기들을 만났다. 그 중 강남라인과 관악라인에서 함께 마와리를 돌던 동기 ㄱ이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의 입사 동기 00가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골골거리면서도 참고 계속 일을 하기에, 너무 걱정이 돼서 그러다 큰일 난다고 병원에 가라고 했단다. 그런데 그 진심어린 걱정에 돌아온 00의 대답.


안 돼. 언니가 하도 아파서 우리 기수 전체가 회사에서 약골 이미지인데, 나까지 그러면 안 돼.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ㄱ의 입사 동기 단톡방에서 다른 동기들이 “역시 00이 멋있다”며 죽을 힘을 다해 병원에 안 가는 동기를 추켜세웠다.

ㄱ은 그 이후 입사 동기들과 멀어졌다. 벌어지는 거리감을 느낀 동기들이 지금까지도 “왜 너는 우리 회사 동기랑은 안 친하고 타사 동기들이랑 더 친해?” 라고 자주 묻는단다. 정말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하겠니?  같은 회사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생각을 말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회사 동기 둘이 줄줄이 퇴사해서 우울해하고 있을 때였다. 다른 길을 찾겠다고 나간 동기들이 멋져도 보이고 걱정도 됐다. 정작 퇴사하겠다고 제일 먼저 난리쳐놓고 벌써 햇수로 5년째 다니고 있는 나는 또 어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타사 선배였나, 집안 어른이었나 여튼 직장 생활 경험이 두터운 누군가에게 털어놨다. 그러자 그 사람은 “너한테 더 잘 된 거 아냐?” 라고 말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되물었다.


이로써 너네 입사 동기 중에 서울대를 나왔거나, 우수 인턴 코스로 곧바로 공채 입사한 사람은 이제 너 뿐인 거 아냐?
지금은 당장 눈 앞의 일이 버거워서 모르겠지만, 나중에 승진 경쟁할 때가 되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승진 경쟁을 하기 전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사 동기라는 게 참 요상망측하다. 대뜸 보면 친구 같다. 단순히 동료라고 하기엔 깊고 끈끈한 뭔가가 있다. 그런데 결국 회사 사람이다. 회사가 아니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 회사가 사람을 모으는 목적은 친목 도모가 아니라 성과를 내는 것이고 그 안의 사람들은 각자 다른 결핍을 채우기 위해 회사에 모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자체가 시발점이었던 친구와는 다르다. 그들과 나는 이미, 치열한 입사 경쟁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와 살아남았다는 '공범'의 기억도 공유하고 있다.  관계의 시작부터가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친구 관계가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한 곳의 회사만 다녀봤고, 다른 사람들은 입사 동기와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입사 동기가 절대 친구는 아니라는 생각은 점점 뚜렷해진다. 당장에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연봉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궁금해 한다. 사회부나 정치부에 가 있다고 ‘부심’ 부리는 동기가 미울 때도 있었다. 1면 기사에 누군가가 이름을 올리면 부럽고 축하한다는 마음 뒤에 질투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생각은 연차가 쌓일 수록 더욱 짙어질 것이라는 걸 안다.


아, ㅊ과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는다. 여전히 둘이 헛소리도 잘 한다. ㅊ은 그 좋아하는 AOA 이모티콘을 사두고도 여자친구한테 들킬까봐 나와의 채팅에서만 쓴다. 나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회사 욕을 ㅊ에게 한다. 회사 안에 있는 대나무숲은 언제 벌목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내 브런치를 구독해 달라고 대놓고 부탁하기도 했다. ㅊ은 흔쾌히 내 구독자가 되어줬고 모르는 체 하며 댓글도 달아줬다. ㅎ


이 모든 것은 ㅊ가 더 이상 내 입사 동기, 직장 동료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진은 직장 동료 사이인 미니 마우스와 미키 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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