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은 미친년처럼
2019년 11월 17일
얼마 전에 업무 미팅으로 어느 학교에 갔었다.
하늘은 우중충한데 학생들은 밝았다.
그 부러운 모습을 보면서 내 대학생활을 물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내 대학생활은 처음 사귄 남친의 자취방 같이 눅눅하고 어두웠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퇴사로 갑작스레 기운 가세, 구질구질했던 연애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어느날 툭 하고 내던져진 취업시장, 매일 추웠던 관악산과 1970년대 건물같은 음기 가득한 인문대, 나보다 더 행복한 것 같던 친구들, 앞섶을 아무리 싸매도 새어나오던 외톨이같은 기분.
과거 어느 순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늘 말해왔지만 이제서야 처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생긴 것이다.
지금의 내가 10년 전 손가인을 만난다면,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테니 좀 더 철 없게 지내도 된다고 가르쳐주고 싶다.
그런 바보같은 연애들로 나를 축내지 않고, 뭐든 해 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방학이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가족 해외여행 사진에 주눅들지 말라고. 남들보다 뒤쳐진 것 같은 패배감과 조급함에 눈 앞에 놓인 썩은 사과를 덥석 먹진 말라고.
주위가 아무리 춥고 축축하더라도, 다시는 안 올 20대 초반을 미친년처럼 발광해서 스스로 따뜻하고 뽀송!뽀송!하게 덥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에 한 번 뿐인 그 예쁠 시절이 마음 한 구석 웅덩이로 남아있는 기분은 늘 안타깝다.
(사진은 한 파워블로거가 찍어 보내준 오늘우리학교. 돌아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