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6.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 방영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죄다 심각하다.
항상 뉴스, 아니면 심각한 표정의 사람들만 나오는 드라마, 그 다음에 또 뉴스, 채널을 돌리면 또 심각한 드라마가 전부다.
집에 앉아 있으면 적막함을 못 견딜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튼다. 하지만 적막감을 떨치기엔 모든 채널이 심각해서 사실 무용지물이었다.
워낙에 어디를 가든 머리만 붙이면 잠이 드는데도 이상하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잠을 제대로 잔 밤이 없었다. 오늘 아침 역시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준비를 마쳤는데도 시간이 한참 남아서 아침부터 텔레비전을 틀었다. 티비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자를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나마 색채가 다양하고 목소리 톤이 즐겁게 높은 채널인 이것 뿐이라 나도 모르게 멍하니 티비를 봤다.
ㅍ 소리가 나는 파이 모양을 닮은 키릴 문자와 영어 O와 발음이 비슷한 o에 대해 배우는 날이었다.
입이 큰 남자와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 둘이 스튜디오에 나와 이렇게 저렇게 글자를 조합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 가나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입이 크다. 그 남자는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서 본 러시아 사람 중에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이었다. 너무 이상한 것은 아이들이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웃음이 없는 도시’라고 말할 것 같다. 사람들이 종종 우리 나라 사람들이 너무 표정이 없다고 말하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 비하면 우리 나라는 아주 즐거움이 넘쳐나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은 우중충한 날씨랑 똑같은 표정으로 길을 걷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한다. 길거리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도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이들도 웃지 않는다. 인형 같은 예쁜 얼굴은 표정이 없어서 정말 인형 같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유모차를 무표정하게 끈다. 집 앞에 놀이터가 있는데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의 굳은 얼굴이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들의 웃음마저도 죽인 것 같았다.
글자를 배우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아주 오래된 것 같은 애니메이션이 방영됐다.
러시아의 전래동화인 것 같았는데, 어차피 채널을 돌려봤자 심각한 것만 나올 것을 알아서 그냥 틀어뒀다가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러시아 어느 숲 속에서 엄마와 남동생과 살고 있던 한 소녀는 버섯을 따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하러 동생과 함께 숲에 들어간다.
호기심이 많은 동생은 얼굴이 달리고 움직이는 버섯을 발견하고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마녀에게 잡힌다. 그 움직이는 버섯은 마녀가 기르는 검은 고양이가 변신한 것이었다.(순간 우리 고양이 실이가 너무 보고싶었다.)
소녀는 사라진 동생을 찾으러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말라죽어가는 한 나무를 만난다. 나무에게 혹시 동생이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고 물어봤지만 나무는 말라 죽어 가느라 기운이 없어서 내 코가 석자라고 했다(맞나?). 왜 그러냐 물어보니 뿌리 아래에 굴을 판 벌레 때문이라고 했다. 소녀는 벌레를 터뜨려 죽인다....... 그러자 나무가 아주아주 잘 생긴(!) 나무로 다시 되살아났다. 소녀더러 고맙다고 하며 마법의 나뭇가지 하나를 선물로 준다.
소녀는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곰과 사슴과 토끼와 다람쥐와, 숲 속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부리나케 도망가는 것을 본다. 왜 그러냐고 묻자 한 곰이 멈춰서서 거인이 오고 있다고 어서 도망치라고 말한다. 거인은 물가에 와서 큰 손으로 물을 떠서 왼쪽 눈을 자꾸만 닦고 비빈다. 소녀는 피하지 않고 거인은 소녀를 손 위에 태워 올린다. 소녀가 거인의 왼쪽 눈에 들어간 무언가를 작은 손으로 꺼낸다. 개운해 진 거인은 소녀를 손에 얹고 러시아 전통 춤같은 춤을 춘다.
그러다 둘은 동생이 잡혀 간 마녀의 성을 발견한다. 동생이 성 안에 잡혀있는 동안 구해준 쥐 두 마리가 나와서 쥐구멍으로 들어가면 성 안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소녀는 잘생긴 나무에게서 받은 나뭇가지로 거인과 자신의 몸을 한 번씩 친다. 그 나뭇가지는 어떤 사람을 크게도 작게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작아진 몸으로 마녀의 성에 들어가 동생을 빼돌리려다 마녀에게 딱 걸린다. 도망 가던 중 소녀가 마법 나뭇가지를 이용해 거인을 원래 크기로 만들어주자 거인은 쥐고 있던 칼로 빗자루를 타고 뒤를 쫓는 마녀와 싸운다. 그러다 마녀의 성을 두동강 낸다. 마녀는 사라지고 소녀와 동생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 어딘지 모르게 괴기하고 목가적인 그야말로 러시아틱한 전래동화였다.
처음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내렸을 때는 군더더기 없는 사회주의 분위기의 건물과 도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자본의 힘으로 끊임없이 화려해 지는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본 최초의 사회주의(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국가의 모습은 그야말로 필요한 기능만을 수행하는 효율적이고 단순하고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모습이었다. 그 이질적인 무성의함과 메마름이 내 세상과는 달라서 멋있었다.
하지만 4일 정도 지났을 때 명치가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웃지 않는 사람들과 늘 심각한 분위기, 단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무뚝뚝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풍겨져 나오는 팍팍한 생활이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나는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 했지만 정말 단 한 명도 답 웃음을 돌려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지인과 함께 있을 때에도 그랬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 서투르거나, 표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너무나 즐겁지 않아서 표출할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무거움이 내 마음도 잠식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숨 쉬는 것도 좀 힘들다고 느껴졌다.
러시아에는 오락거리가 없다. 그나마 거리 여기저기에 있는 눈에 띄는 가게는 ‘빈랍’이라는 곳으로 보드카와 맥주, 와인을 파는 술 체인점이었다. 그게 거의 큰 길마다 한 곳씩 있었다. 낙이 없는 사람들이 40도가 넘는 독주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의 위안은 커피였다.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공항에 가기 위해서 미리 택시를 예약해 뒀는데, 택시 픽업 시간은 1시였고 체크아웃 시간은 11시여서 남은 시간 동안 눈에 익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중앙 광장 맞은편에는 ‘카페마’라는 커피집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온 이튿날 아침에도 커피를 찾아 헤맸는데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2층집 입구가 왠지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했던 카페다. 마지막날 아침인데 못할 게 뭔가 싶어서 용기를 냈다. 내부는 바깥과는 완전히 달랐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커피콩과 바리스타 자격증, 상장, 그리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사진 속에 서 있는 남자와 똑같은 사장님. 지금까지 봐 왔던 러시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사장님은 좋은 커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던 사람일 듯했다. 한쪽 벽면에 진열된 작은 소품 중 제주도 돌하르방이 4개나 서 있었다. 한국에 온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 특유의 무표정에 겁이 나서 조용히 커피만 마셨다. 에스프레소 맛이 정말 좋았다.
카페마 커피로 들어간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2층 창가에 앉아 광장을 봤더니 텐트 행렬이 길게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주말에만 한다고 생각했던 장터가 금요일 오전부터 열린 것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얼른 시장에 들어갔다. 간이로 설치한 텐트 아래에는 온갖 식품이 진열돼 있었다. 러시아 특유의 화려한 부활절 빵, 온갖 열매로 담근 장아찌 같은 것, 너무나 싱싱한 채소들, 고려인 할머니가 팔고 있는 한국식 김치, 덩어리째로 팔고 있는 차가버섯, 꿀, 좋은 냄새가 나는 소시지와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 곰새우와 킹크랩까지.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꽃과 묘목을 파는 가게들이었다. 먹을 것을 파는 시장 곳곳에 빨갛고 노란 꽃이 늘어섰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점포들에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이었다. 표정이 없는 그들이 화사한 꽃을 사러 꽃 점포마다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아랫집에 사는 사람인지 옆 집에 사는 사람인지 아침마다 나와서 무표정으로 다 쓰러져가는 마당에 텃밭을 가꿨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땅에 어여쁜 꽃들을 심어놓고 그것을 보며 작게나마 행복을 느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블라디보스토크가 그리워진다면 그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800원짜리 커피 때문일 거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아르바트 거리의 5 o’clock이었다. 레몬타르트와 아메리카노가 환상적이었던 작은 아지트같은 곳. 카페마에 가서 커피를 마셨는데도 그 가게 커피는 꼭 한 번 다시 마시고 싶었다. 저번에 ‘좋은 사람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다시 와서 함께 앉아보겠다’고 다짐했던 그 창가자리에 앉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때는 그 자리에 못 앉았는데,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진 오늘은 큰 노력 없이도 앉게 됐다.
오늘도 음식을 많이 시켰다. 그 중 라떼가 정말... 태어나서 먹은 라떼 중에 단연 최고였다. 나는 라떼보다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T는 항상 스타벅스에 가서 라떼+(두유)+샷 추가를 주문하는 사람인데 그런 T에게 꼭 한 번 사 주고 싶은 라떼였다. 창가 자리 벽에는 길쭉한 책장이 있었는데 ‘BOOK EXCHANGE’라고 적혀 있었다. 한 권을 가져가고 한 권을 두라는 거였다. 내가 들고 온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안내 책을 두고 싶었으나, 그 책장에 JAPAN도 있고 BEIJING도 있는데 KOREA나 SEOUL을 두지는 못할 망정 블라디보스토크에 블라디보스토크 책을 두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구경만 했다.
북러정상회담에서 그다지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는지, 수가 틀린 김정은이 예정보다 빨리 돌아간다고 해서 시내 교통이 또 정체됐다. 하나 밖에 없는 시내에서 공항 가는 길도 엄청 막혔다. 1시간이면 충분히 갈 거리를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이번 여행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북한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너무나 가까이서 마주쳐 봤다는 것이다. 공항에는 독특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10명 남짓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안에 킹크랩을 파는 곳에 가서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기도 했다. 말투와 뱃지를 보니 북한 사람들이었다. 항공사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남한 사람들이 있는 쪽을 힐끔힐끔 보고 나는 또 그들을 힐끔힐끔 봤다. 우리는 같이 수속을 밟고 같이 심사를 받았다. 무리지어 서 있는 그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갈 일도 있었다. 함께 공항 내 면세점에 들어가서 쇼핑도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씨가렛또” 라고 말하며 담배 한 보루를 사 갔다. 조심히 돌아가시라고 인사를 하면 왠지 받아줄 것 같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랑은 말도 쉽게 하는데 같은 민족이 그렇게 지나치면서도 모르는 척 말도 섞지 못하게 됐다는 게 슬펐다.
비행기는 연착이 됐다. 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팽팽하게 잡고 있던 긴장이 한 데 섞여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커피를 또 마셔봐도 해결이 안 됐다. 어제 압쩨까(러시아 약국)에서 산 진통제를 꺼내 두 알을 삼켰더니 5분도 안 돼서 두통이 사라졌다. 어제도 만성 두통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두 알을 먹었었는데 10분도 채 되지 않아 머리가 깨끗해졌다. 러시아 사람들이 우리보다 덩치가 커서 한 알에 들어있는 유효 성분이 더 많은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러고 보니 커피 말고도 블라디보스토크가 그리워 질 게 하나 더 있네.
머리가 아픈 중에 나는 이 나라에서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기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난 터라 나를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이 문화에서는 1년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30여 년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았다던 미국 여성 엘레노아르가 생각났다. 자유의 대명사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어떻게 이 회색도시에서 버텼을까. 아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자세하게 담아 (누군가에게) 썼다던 수십 년 동안의 편지가 그를 버틸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이 도시에 머물렀던 5일 내내 일기 같은 기록을 남겼다. 피곤해서 곯아떨어질만 한데도 어떻게든 그날의 글은 완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었다.
짐을 찾고 공항철도를 타고 집 근처 역에 내리자마자 운전을 해서 호텔에 맡겨놓은 고양이를 데리러 갔다. 비행기가 연착된데다 할 일도 많았고 짐도 정리하다보니(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캐리어를 열 수 없다...) 12시가 다 되었다. 그 시간에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매운 게 들어오니 집에 돌아온 게 실감이 났다.
너무 피곤해서 벌써 내일(오늘)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일(오늘)은 내 생일이다. 나와 생일이 같고 태몽도 같고 싫어하는 작가도 같은 사람이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 맞춰 보내준 축하 메시지를 보고 잊어버리고 있던 생일을 기억해냈다. 원래 12시 땡 하면 축하한다고 메시지 보내주려 했던 건 나였는데 블라디보스토크 후유증으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일만큼은 집에서 맞고 싶어서 처음 생각보다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하루 앞으로 끊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렇게 지친 것을 보면 정말 잘했다 싶다.
안녕, 블라디보스토크. 내가 그토록 용기 내어 말했지만 누구도 웃어주지 않았던 그 인사를 여기서나마 해보려 한다. 다 스비다냐, 블라디보스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