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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25. 2019

블라디보스토크의 숨은 보석, 루스키 섬(4)

2019.4.25.

4월 25일은 출발 전부터 조마조마한 날이었다.


앞 글에 잠깐 언급했다시피, 블라디보스토크행 항공권을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여행 기간 중 북러정상회담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동 경로까지 똑같았다. 우리 집(숙소) 바로 앞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을 통해 러시아에 들어올 김정은이, 하필, 내가 루스키 섬 트레킹을 예약해 놓은 날 루스키 섬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를 타기 사흘 전에 불길한 메시지를 받았다.

3일이면 충분히 돌아보고도 남는다는 작은 도시에서 5일이나 머물기로 했기에 하루 정도는 조금 다른 곳을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 자유여행객들이 많이 쓴다는(그런가요?)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4시간짜리 ‘루스키 섬’ 트레킹 코스를 예약해 뒀다.

그런데 하필 19일, 해당 가이드사에서 ‘어쩌면 25일에 루스키 섬 출입이 통제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돼......

어제까지만 해도 김정은이 기차역 앞 보안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 루스키 섬 트레킹은 90%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마음을 접은 상태였다. 그런데 러시아 정부는 너무나 쿨하게도(?) 루스키 섬을 막지 않았다. 무려 투어 하루 전에야 그대로 트레킹 진행을 한다는 확정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엔 그냥 의식과 시간의 흐름대로 하루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래서 무사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1. 마리아

루스키 섬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남쪽에 있는 큰 섬이다. 왼쪽이 뚱뚱하고 오른쪽이 홀쭉한 영어 알파벳 U자를 닮았다. 천혜의 지형 덕에 러시아는 섬에다가 ‘러시아의’ 라는 뜻의 이름까지 붙였다. 전방이 바다로 둘러싸여서 소련시절 군사 요충지로 사용됐고 일제도 들어와서 섬 곳곳에 지하 요새를 만들었다. 곳곳이 벌집처럼 뻥뻥 뚫려있고 아직도 포가 남아있는 루스키 섬은 2012년 9월 APEC 정상회담이 열린 뒤부터 민간인들의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다가 발견한 누군가의 감각적인 낙서
해양공원에 있던 또 다른 누군가의 감각적인 낙서

마이리얼트립에서 예약한 루스키 섬 투어는 단건으로 가이드를 받는 여행 상품이었다. 오전 9시에 해양공원 분수광장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8시 35분 쯤 도착했는데 그 넓은 해양공원이 익숙한 외형의 사람들로 조금씩 조금씩 차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구석구석 흩어져 있던 우리 민족이 그렇게나 많았다. ㅎㅎㅎ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
러시아어로 "바다"는 '물'이라는 뜻이랬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20명 남짓한 이번 투어 일행을 안내해 줄 가이드 마리아는 고급 한국어를 구사했다. 새로운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루스키 섬 투어 가시는 거죠?” 라고 말을 건넸다. 1998년에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나도 마리아가 한국어를 하는 만큼 러시아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앙분수. 낡았지만 예쁘다
해양공원의 배가 홀쭉한 떠돌이 개. 먹을 것을 달라고 눈치를 주는데 저 분들은 손에 든 음식을 끝내 안 줬다. 너무 불쌍했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마리아는 아기 오리떼를 이끄는 엄마 오리처럼 우리를 거느리고 해양공원 발코니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 벌써 나흘이나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바닷물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자동차와 대형 선박이 내뿜는 매연이 가득한 이 도시의 하늘을 생각하며 바닷물도 당연히 그렇겠지 했는데 제주도보다 더 맑은 바닷물을 보고 정말 놀랐다.

맑은 바닷물 위에 유유자적 갈매기
안전장치가 없는 대관람차
새끼호랑이 동상. 호랑이를 사랑하는 블라디보스토크. 곳곳에 호랑이 동상이 있고 시의 문장도 호랑이다.

마리아는 일행들에게 (한국인 사이에서) 유명한 알리스커피(해적커피) 한 잔 씩을 서비스로 나눠줬다. 한 때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해 내 마음을 훔쳐갔던 캡틴 잭 스패로우의 여성 버전일 법한 해적이 하얀 종이컵 위에 그려져 있었다. 마리아는 “루스키 섬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여기서 화장실 다 갔다 오세요” 하고 겁을 줬다. 가뜩이나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나는 너무 무서워서 커피를 두 모금 마시고 그냥 다 버렸다. (사실 맛도 없었다)

해적커피로 유명한 알리스 커피
시의적절한 기념품

2. 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

우리 차에는 총 6명이 탔다.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은 러시아 청년이 멋드러지게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을 했다. 해양공원에서 차를 타고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가로질렀다. 보드카를 싸게 사기 위해 발품을 팔아 찾아갔던 술 가게 ‘빈랍’과 ZARA가 잠식한 ‘블라디보스토크 굼’, 여행 와서 잠은 고급지게 자야 한다며 예약을 하려다가 어마어마한 가격에 취소해야 했던 언덕 위 ‘롯데호텔’을 지났다.

중앙광장에서 멀리로만 보던 루스키대교(2012년 APEC회담 직전에 극적으로 완공됐다고 한다. 부실날치기시공? 무섭다)를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해변을 따라 어마어마하게 넓게 지어진 건물들이 나타났다. 김정은과 푸틴의 정상회담이 열릴 극동연방대학교였다.

교도소같이 생긴 학교와 버스 기다리는 학생들

근처에 가 보니 학교와 도로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젊은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학교에 다니려면 무조건 기숙사 생활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이 학교는 재학 중인 학생 말고는 아무도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막는다고 한다. 하지만 건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캠퍼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탈 수도 있고 바다를 보며 산책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외부인에게 개방된 3, 5, 8번 건물에서 학생식당도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극동연방대학교

원래는 이 루스키 섬 투어 프로그램에도 잠시 극동연방대학교 외관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루스키 섬 통제를 하지 않는 대신 대학교를 막았다. 경찰관이 학교로 들어가는 문마다 서서 출입하는 사람과 차량을 검문하는 모습을 차를 타고 쌩 지나며 봤다.

나중에 섬에서 나오는 길에 보니 차마 학교로 들어가지는 못한 기자들이 도로 건너편 언덕 위에 올라가서 줌을 당겨 취재하고 있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 중 노란색 점퍼를 입은 사람을 봤는데, 어제 만난 우리 선배였던 것 같다.. 또르르...

??????
서... 선배?




3. 뱌틀리나 곶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 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차가 핸들을 꺾어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엉덩이가 아파올 무렵 마리아가 “자, 내리실게요” 라고 말했다.

북한 모양

눈 앞에 펼쳐진 절벽은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이었다. 한반도 지도를 떠올렸을 때 북한 쪽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듯했다. 그래서 이곳 뱌틀리나 곶을 ‘북한섬’이라고도 부른단다. 안개가 짙게 끼기로 유명하고 1891년에는 프랑스 군함이 루스키 섬에 접근하다가 근처 여울에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엊그제, 어제와는 다르게 날씨가 좋아서 섬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바닷바람은 정말....

정말 멋있지만
조금만 내려다보면 쓰레기가 나뒹굽니다

운이 좋으면 이 곳에 가는 길에서 야생 여우도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차를 타고 가서 그런지 모래먼지만 날렸다.




4. 트레킹

베테랑 가이드 마리아는 여행 참가자들 모두의 사진을 빛의 속도로 찍어준 뒤 얼른 차에 다시 타라고 했다. 5분을 간 후 차에서 다시 내렸더니 또 다른 모래벌판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1시간 정도 트레킹을 하자고 했다. 눈 앞에는 괴상한 구멍이 나있는 요새가 있었다.

트레킹 시작

러시아는 아직도 전쟁과 영웅의 전설을 숭상하고 과거의 영광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거리에 심심찮게 보이는 밀리터리 용품점이나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군복을 입고 경례를 하고 있는 사진 등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직도 블라디보스토크 곳곳에 요새와 군인과 해군함대가 있는 것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싶었다.

요새

루스키 섬은 깎아지른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트레킹을 하면서도 살짝 발을 헛디디면 떨어져 버릴 것같은 구간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고개를 내밀어 절벽 아래를 살짝 내다보면 너무도 투명하고 맑아서 푸르르게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바닷물이 있었다. 좁고 미끄러운 길을 걷는 것도 힘든데 아름다운 바닷물에서 눈을 떼기가 더 힘들어서 자칫 큰일이 나겠구나 생각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들꽃까지 피어 있어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데에 홀린다는 게 이런걸까 싶었다.

한참 바다를 끼고 걷다가 마리아가 멈춰섰다. 절벽 아래 해안가로 이어지는 가파른 골짜기에 낡은 밧줄이 하나 턱하니 놓여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곳 루스키 섬에서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그 밧줄 하나에 목숨을 의지해서 내려간다고 했다.

썩은 동앗줄....?

예전에 캘리포니아에 갔을 때도 그런 밧줄을 본 적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해안 역시 루스키 섬처럼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저 아래 해변으로 가려면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야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든 거기에 가고 싶어서 밧줄을 대강 꽂아두고 짐을 싸맨 채 내려가고 올라오고 그랬다.

캘리포니아. 내가 좋아했던 산타크루즈

 나는 그 때 멋을 부린다고 얇은 가죽 끈으로 된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튼튼한 운동화를 신은 전남친 찰리가 좋은 풍경을 보여주겠다며 꼭 거기로 내려가자고 했다. 죽을힘을 다해 내려간 뒤 혹시 내가 아끼는 샌들 끈이 망가진 게 아닌지 화가 났다. 샌들을 아끼고 싶어서 맨발로 해변을 걷다가 발에 뭔가 끈적한 게 느껴져서 보니 누가 씹다 뱉은 껌이 뒷꿈치에 붙어있었다. 정말 너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찰리가 무릎을 꿇고 내 발에 붙은 껌을 손으로 떼 줬다. 그래서 단순하게 다시 기분이 풀렸던 기억이 그놈의 밧줄 때문에 다시 떠올랐다. 샹

그 땐 그랬지~~~


5. 토비지나 곶

나뭇가지들이 시커먼 숲이 나왔다. 마리아와 우리는 계속 걸었다. 뱌틀리나 곶의 서편에 있는 토비지나 곶이 나왔다. 누워있는 거위 부리같이 보이기도 하고 도끼같이 보이기도 했다.

토비지나 곶

곶의 곳곳이 절벽이었다. 조금만 꺾으면 또 절벽, 조금만 더 걸어 내려가면 또 절벽이었다. 아찔할 정도로 높은 절벽 때문에 눈앞이 까마득했지만 덕분에 가는 곳곳이 절경이었다.

덕분에 마리아도 바빠졌다. 유창한 한국어로 여기저기에 있는 포토 스팟을 알려줬다. 절벽 끝에서 찍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고 했지만 본인이 직접 벼랑 끝에 가서 서지는 않았다. 마리아는 “집에 아기가 있고 혼자 키우고 있어서 나는 죽으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아래는 마리아가 알려준 곳에서 마리아가 알려준 포즈로 찍어본 사진들. ‘포토 스팟’이라고 하는 거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포토 스팟에 가니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찍냐는 생각에 열심히 교과서대로 따라 찍었다.


밀어보라고 시켰다

다시 차를 타러 내려오는 길에 마리아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마리아는 1998년 한국에서 공부할 때 IMF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1년에 2-3번은 한국을 찾는단다. 서울 말고도 가 본 곳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았던 곳은 부산이라고 했다.


“부산은 블라디보스토크랑 비슷해요. 바닷가 옆이라 바람도 비슷해요. 그래도 서울보다 공기가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만약 98년에 제가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한국에 살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름답지만 여기저기 부서진 채 고쳐지지 않고 있는 시내 건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마리아는 “우리나라 건물에는 주인이 없어서 그렇다”(공산주의 국가)며 “돈이 좀 모아지면 그 때 고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나라에 대한 애정을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교통체증이 엄청난 거 보셨죠? 다른 곳 같으면 옛날 건물을 다 부수고 도로를 넓혔겠지만, 우리는 최소 100년 넘은 우리 건물들을 사랑해서 도로를 1차선에서 늘리지 않고 있는 거예요”

마리아와는 어제 김정은이 기차에서 내렸던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헤어졌다.


6. 블라디보스토크 역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열차 칸 번호는 01부터 099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숫자가 커질 수록 객실의 환경이 열악하다. 우리나라 유튜버 중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꼬리칸에 타고 유럽에 가는 일주일 간의 여정을 보여줘서 인기를 끌었던 사람도 있다. 이 열차는 각 역마다 15-20분 씩 선다고 한다. 마리아가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의 이름을 말해줬는데 특유의 발음과 속도 때문에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역에 들어가려다 흠칫했다. 들어가는 사람마다 컨베이어벨트에 짐을 올리고 보안검색대 같은 곳을 통과해야 했다. 러시아는 공항에 들어갈 때에도 이런 식으로 수색을 한다더니 기차역도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부산역과 교류를 맺었나보다

화장실 표식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키 큰 러시아 청년이 급히 따라와서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Can I help you?” (발음이 너무 러시아말 같아서 눈치로 알아들었다)

“Oh, I’m looking for a toilet.”

“dsjkfjadkfdkjfksdfjkzdjfkzd(??????)”


영어로 물어봐놓고 러시아어로 대답하는 건 뭐지? 그리고 난 이미 커다랗게 ‘WC’라고 쓰인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는데? 뭐, 그래도 러시아에 와서 거의 처음 받아 본 호의에 감사했다.

천장도 아름답다

아, 그리고 또 놀라운 것.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사이에 웬 부스가 있고 안에는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이게 뭐지 하며 들어가려 하는데 “스톱스톱” 했다. 뭔가 손짓발짓으로 이야기하면서 20루블이라고 했다. 기차표가 없으면 기차역 화장실을 쓰는데 돈을 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데 100년 된 문화유산 고칠 여유가 없다니.. 어서 빨리 전쟁을 관둬야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9288km 기념비


7. 우흐 뜨이, 블린!

아침 9시부터 트레킹을 가느라 식사를 하나도 못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내려서 어제 저녁부터 점찍어둔 블린 가게 ‘우흐 뜨이, 블린!(오 너, 블린!)’까지 가는 길에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했다.

블린은 러시아 전통 팬케이크다. 얇게 부친 블린에 초콜릿, 연어, 견과류, 꿀, 연유 같은 토핑을 얹어 먹는다. 일단 1차로 시킨 블린은 3개였다.

연유 블린, 햄치즈 블린, 버터 블린

아니 이건 정말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었다.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블린을 2개 더 시켰다. ㅎㅎ

구운 사과와 아이스크림 블린, 각종 재료를 넣은 블린

이 집에서도 ‘5 o’clock’ 처럼 아메리카노 한 잔이 85루블이었다. 이 곳 아메리카노도 천상의 맛이었다. 왜 블라디보스토크는 커피가 죄다 맛있지?(블라디보스토크의 스타벅스라는 ‘알리스 커피’ 빼고) 그래서 커피도 무려 세 잔이나 마셨다. 계속 주문하러 갔더니 카운터에 있는 오른팔 문신남이 ‘뭐지 이 동양인?’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ㅎㅎㅎㅎ

우흐 뜨이, 블린은 5 o’clock의 바로 맞은편에 있다. 마주본 두 가게가 모두 아늑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다음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리고 좋은 사람이랑 또 오게 된다면, 그 사람이랑 꼭 두 가게 창가에 앉아서 느긋하게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싶다.



8. 율 브린너

시암 왕국 왕과 영국 여성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 ‘왕과 나’에서 율 브린너를 처음 봤을 때 어린 나는 ‘세상에 저렇게 잘생기고 느끼하게 생긴 사람이 있구나!’ 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율 브린너가 맡은 역할이 태국의 왕이어서인지 ‘대체 저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서양사람같은데 어딘가 동양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왕과 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율 브린너 동상이 있다. 율 브린너는 미국 영화 배우지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 할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이민을 온 이민자였고 할머니는 몽골계 여성이었다. 그래서 얼굴에 동양적인 느낌이 풍겼던 거였다. (역시 어린이의 눈은)

명장면이지만 어린 내 눈엔 웃겼다

율 브린너 동상은 내가 그토록 가고싶었으나 결국 가지 못한 ‘연해주 국립 박물관’의 맞은편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왼쪽 허공을 향해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못 간 연해주 국립 박물관
율 브린너 동상

동상 뒤에는 그가 태어난 생가가 있다. 생가는 민간인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삐까뻔쩍하다. 알고보니 1896년 울릉도와 압록강 두만강 채벌권이 러시아로 넘어갔을 때 그 권한자가 율 브린너의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조선의 삼림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챙긴’ 집안이었던 것이다. 글쎄, 그 좋아보이는 집이 율 브린너 집안의 부를 보여주는 척도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내가 그의 생가와 동상을 보고 받은 느낌이었다.


9. 과일 가게

우리 집 뒤에는 나흘간 지나다니며 눈여겨 봤던 과일 가게가 있다. 여느 블라디보스토크 가게들처럼 출입문이 작아서 선뜻 들어가기 어렵지만 그나마 유리 너머로 내부가 보여서 알록달록한 과일이 늘 눈길을 끌었다.

오늘 저녁에 집에 들어오기 전에 굳이 들러 과일을 사 보기로 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수염을 기른 주인 남자가 먼저 “하이” 하고 인사를 했다.

원래는 한 번 시식해 볼만한 과일 몇 개만 사려 했는데, 화려한 비주얼과 달콤하고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좋은 향기에 사재기를 해버렸다. 애플망고, 체리, 사과, 납작복숭아, 오이 세 개 등등....

아저씨가 각각 과일을 저울에 올려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런데, 커피 한 잔에 85루블인 나라에서 그 과일 값이 수 천 루블이 나왔다...............

아저씨는 내가 계산을 하려고 돈을 세는 동안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 위해서였는지 괜히 영어로 말을 시켰다.


“어디서 왔어?”

“한국”

“아! 여기 근처에 한국 사람 많아!(여기서는 영어가 안 되어서 러시아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서)”


그냥 속는 셈 치고 돈을 지불했다. 어차피 한국으로 떠날 내일 아침은 어떻게든 집 안에서 해결을 해야 하니, 과일로 식사를 해야겠다. 

오늘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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