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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Jun 16. 2020

핸드폰과 멀어지는 중입니다.

―핸드폰디톡스


학교 다닐 때 내 별명 중 하나는 '3일'이었다.


 작심삼일 뭐 그런 게 아니고, 문자를 보내면 답장을 3일 지나서야 한다는 뜻이었다. 스마트폰이라는 게 대학교 2학년 때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겨우 문자 주고받기와 통화만 되는 2G 폰을 딱히 들여다 볼 이유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 나는 거의 매일 야자를 째고(?) 집으로 달려왔는데, 도착하자마자 하는 일이 내 침대 위에 핸드폰을 던져버리는 거였다. 그러곤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잠깐 잠들었다가 밤까지 공부를 했다. 핸드폰은 그 다음날 아침 알람 소리를 듣는 용으로만 사용했다.


 남들 따라 대세 따라 스마트폰을 하나 장만한 뒤로도 나는 그다지 핸드폰과 친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어플이란 걸로 단톡방을 만들고 대화를 하니 어쩔 수 없이 구매했던 것 같다. 노트북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강의 필기하기엔 딱이었던 추억의 '넷북' 덕에 핸드폰으로 뭔가를 적어놓는다거나 인터넷 서핑을 할 필요도 없었다. 아날로그 필기 예찬론자인 덕에 스케줄 관리도 학교 학생 수첩에다 죄다 했다. 핸드폰은 그야말로 남들과 연락하기 위한 그 용도로만 사용했다.


해마다 사서 썼던 학생수첩




 평화롭던 내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기자라는 직업이었다. 시대착오적이게도 여전히 '하리꼬미'를 하라고 했던 신문사에서의 2014년은 핸드폰과 거리를 두던 나를 한 순간에 핸드폰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두 시간마다 한 번 씩, 1분 단위도 늦어서는 안되었던 1진 선배에게의 전화 보고와, 수시로 걸려 오는 선배들의 지시(라 쓰고 갈굼이라 읽는다) 전화·문자 때문에 나는 그 추운 겨울에 장갑도 못 낀 채 핸드폰을 쥐고 벌벌 떨었다.(장갑을 끼면 터치가 안돼서 바로 전화를 못 받을 뿐더러 자판도 못 쳐서 메신저 보고도 할 수 없다.)

 특히 선배에게서 걸려 오는 전화는 즉각 받아야 했다. 내게 전화를 건 선배가 두 번 이상 착신음을 듣게 되면 그건 파국의 시작이었다. 소싯적 별명이 '3일'이었던 나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가방 구석에 넣어놓았다가 선배가 건 전화가 울리는 것을 못 듣는 바람에 '언어로' 후드려 맞은 적도 있다. 그놈의 전화와 메시지가 언제 도착할지 몰라서 우리는 몰래 사우나에 가서 샤워를 할 때에도 지퍼백 안에 핸드폰을 넣고 들어가서 씻어야 했다. 그러다 전화라도 올라 치면 알몸으로 탈의실까지 뛰쳐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수습을 뗀 다음엔 착신음 횟수가지고 혼을 내던 선배는 없었지만 6개월 간의 듣도보도 못했던 군기잡힌 생활은 내 습관을 송두리채 바꿔놓았다. 게다가 밤 12시 쯤 지면 마감이 되기 전까지는 회사로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수시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덕에 퇴근을 한 후에도 핸드폰을 꼭 옆에 끼고 혹시 데스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까 1분 단위로 들여다보고, 혹시 나는 몰랐던 타사의 기사가 뜨진 않을까 1시간 단위로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는, 워라밸이 완벽하게 무너진 비정상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퇴사를 하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게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일이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각종 기관·기업들의 보도자료 관련 전화와 문자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기자 명함을 여기 저기 돌리며 공공재처럼 뿌려놨던 핸드폰 번호로부터 아예 벗어나고 싶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혹시나 취재원일까 싶어 받을 수 밖에 없었던 6년 간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게 가장 확실하지 않을까 했다. 늘 핸드폰이 내뿜는 전자파에 노출되어 있어서였는지 만성 두통을 달고 살던 그 생활을 정말로 終 내버리고 싶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퇴사 인사를 하려고 연락처를 들여다 본 순간, 그 동안 나와 만나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사람이 3500여 명에 달한다는 놀라운 사실과, 그들 가운데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깨닫고 핸드폰 번호 바꾸기는 포기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핸드폰과 멀어지는 '핸드폰 디톡스'를 하고자 한다.



1. 인스타그램 지우기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핸드폰에서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우는 일이었다. 나를 핸드폰 노예로 전락시키는 데에는 인스타그램만큼 지분이 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좋은 곳엘 가도 그걸 내 눈과 마음으로 만끽하기보다는 그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급급했다. 올릴만한 사진이 없으면 굳이 사진첩을 몇 년 전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좀 '갬성'있어 보이는 놈을 기어코 찾아냈다. 업로드할 게 없을 때에도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내 친구들과 이름 모를 이웃들, 인플루언서들의 포스팅을 구경했다. 한 번 구경을 시작하면 최소 30분에서 많게는 1시간 정도까지 꼼짝없이 인스타그램 세상 속에 붙잡혀 허우적거렸다.


 이젠 어쩌다 꼭 기록해 놓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만 아이패드나 노트북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업로드한다. 알림도 꺼 둬서 누가 댓글을 달아도 얼른 들어가서 확인하고픈 마음이 사라졌다. 자연스레 시간도 절약될 뿐더러 너무나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을 보며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하다. 지금까지 찾은 단점은, 너무 들여다보질 않았더니 나체 사진을 올리는 스팸 계정들이 나를 그렇게 태그하고 있단 것 정도...? 한 번 씩 접속해서 그들을 차단하는 것도 귀찮다. 이러다 빠른 시일 내에 아예 인스타그램 계정을 싹 다 지워버릴 것 같다.



2. 무음 모드로 바꾸기


 스마트폰, 특히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 생긴 이후로 우리들은 단 1분 1초도 바깥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순간이 없게 됐다. 내가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핸드폰의 그 '항시연결성' 이었다. 사람이 좀 혼자 조용히 멍 때리고 싶을 때도 있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싶지 않을 때도 있는 건데, 이건 뭐 매 순간 '온라인' 상태로 대기하면서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자극에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아니나다를까 퇴사 소식을 알리자 여기저기서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졌다. 갑자기 헤어지는 것은 나 역시 아쉽지만, 그 분들 입장에서는 한 번의 연락이 내 입장에선 수십 통의 홍수가 되어 나를 덮쳤다. 그걸 피하고 싶어서 퇴사한 것도 큰 이유인데, 되려 퇴사 때문에 다시 거미줄 한 가운데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또 내 인생 다음 단계를 위해 부지런히 공부를 해 둬야 할 지금,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림은 집중을 와장창 깨뜨려버렸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나도 백수 지인들을 보며 '시간 많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약 보름 정도 백수 생활을 해 보니 되려 집순이의 생활이 더 바쁘다. 백수도 충분히 바쁘거늘, 자신들이 쉬는 주말에는 아무도 연락하지 않다가 회사에 출근해서 앉아있는 주중에만 골라서 연락하는 것도 꽤나 얄미워서 그냥 알림을 꺼버렸다.


 아직도 6년 간의 기자 생활 때를 못 벗어서 알람이 울리지 않는 핸드폰도 자주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알람이 울리지 않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안읽씹' 하는 메시지들이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이제 정말로 연락이 안 오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혹시나 싶어서 핸드폰을 켰는데 역시나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 것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언젠가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이 슬퍼질 날이 오려나? 하지만 당분간은 오래오래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고요함이 너무나 그리웠다.



3. 노트북 적극 활용하기


 요즘엔 노트북을 쓸 일이 많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영어 듣기 공부를 하려고 노트북을 켠다. USB를 꽂아 영어 녹음 파일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핸드폰으론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노트북을 켠 김에 모르는 영어 단어도 노트북으로 검색한다. 그러다보면 인터넷 서핑도 노트북으로 한다.


 이런 저런 생산적인 일을 노트북으로 하다보니 그동안 몰랐던 좋은 기능들을 하나둘 씩 발견하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이메일 계정을 연동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든지, 새롭게 업그레이드 돼서 너무나 효율적인 브라우저들이라든지, 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캘린더 프로그램 등 'productive' 한 기능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노트북을 적극 활용하다보니 자연스레 핸드폰 사용은 더욱 멀어진다. 특히 핸드폰으로 많이 하던 쓸데없는 일 중 하나가 인터넷 서핑이었는데, 훨씬 큼지막한 노트북 화면으로 훨씬 편리한 키보드를 쳐가며 정보 검색을 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졌다. 수시로 핸드폰을 켜서 일정을 확인하던 습관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노트북 안에 내 계정들을 죄다 연동시켜 놓은 캘린더 프로그램이 있는데 뭘.


 노트북을 적극 활용하다보니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게 되는, 예기치 못한 장점도 있다. 늘 가까운 곳에 뒀다가 가볍게 지문 인식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켜지던 핸드폰과 달리, 노트북은 놓여 있는 곳까지 내가 직접 가야하고, (상대적으로) 커다랗고 무거운 기기를 펼쳐야 하고, 꺼져있던 전원을 켜서 기다려야 하다보니, 귀차니스트인 나에게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켜지 않는 문명의 利器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요즘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노트북



4. 멜론과 넷플릭스 지우기


 사실 멜론과 넷플릭스를 지운 것은 핸드폰디톡스가 첫 번째 목적이 아니었다.


 퇴사를 결심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었는데, 그동안 회사가 내 주던 것을 이젠 내가 다달이 내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다달이 지출하던 돈은 몇 가지 적금과 ISA, 주택청약이 가장 파이가 컸고, 여기에 자동차와 운전자보험만 더해도 당장 수입이 없을 나에겐 타격이 컸다. 이러다보니 핸드폰 요금제도 더 싼 것으로 바꾸게 됐고, 이것 외에 쓸데없이 달마다 나갈 것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멜론과 넷플릭스였던 것이다.


 넷플릭스를 지우는 것은 크게 아쉽지 않았으나, 워낙 음악을 많이 듣는 나로서는 멜론 삭제는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이젠 출퇴근 길에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시간 때워야 할 일도 없어졌고, (오리지널 음원은 찾기 힘들지만) 다양한 DJ들이 믹싱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무료 어플 soundcloud가 최후의 보루처럼 남아있었던 덕에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멜론을 쓰지 않는다 ⇒ 핸드폰 쓸 일이 없다 ⇒ 멜론을 쓸 필요가 없다 ⇒ 핸드폰을 안 본다' 라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넷플릭스 역시 자주 보진 않았지만 한 번 시리즈를 시작하면 주말 내내 끝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였기에 잘 지웠다 싶다. 이 두 어플에 지출하던 요금을 합치면 수 만 원이다. 그리고 이 두 어플을 사용하지 않으면 외출해서 모바일 데이터를 쓸 일도 없을테니, 핸드폰 요금제를 다운그레이딩 한 것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의 핸드폰 디톡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안읽씹' 당하거나 '부재중전화' 취급을 당해서 상처받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이 거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오늘은 내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전화 알림을 꺼 뒀다는 메시지를 이모티콘으로나마 남겨놓아 봤다. 부디 저의 이 챌린지를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다들 모르셨겠지만 전 원래 '3일'이었답니다....

 내 '핸드폰과의 이별'은 아직까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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