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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 Sep 18. 2019

매일 들어도 설레는 그 말 '퇴근해여’

하루 종일 기다린 소식. 여보의 퇴근 소식


나는 3년 동안 사내 연애를 했고 2년째 사내 부부로 생활 중이다. 20대에 지금 직장에 들어와서 1년 반 동안 지지고 복고 욕하며 일하던 동료가 남친이 되었다. 업무가 서로 협력해야 가능했기에 출근하면 업무 때문에 소통해야 했고, 퇴근하면 사무실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느라 종일을 붙어있었다. 심지어 점심 먹는 멤버까지 같아 밥 먹고 탁구 치며 진짜 거의 모든 활동을 함께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회의를 언제, 누구랑 들어가서 언제 끝나는지까지 거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꾀고 있었다.


독립적인 연인들은 답답해서 어쩌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너무 만족했다.(모..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좀 철거머리처럼 앵기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하루 종일 함께하는 게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나처럼 운 좋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특히 결혼을 하고 난 후 더욱 사내 부부 장점이 두드러졌다. 이제는 24시간을 같이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 눈떠서 같이 준비하고, 같이 출근해서,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해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잠든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이런 생활은 의외로 정말 재미있다.


그렇게 생활한 지 5년 정도 됐던 때인가.. 작년부터 그 패턴이 깨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야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IT기획 팀에서 일하는 남편은 조직 내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들어가며 나와 같이 퇴근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내가 사무실에 남아 책을 읽더라도 7, 8시까지는 기다릴 수 있었는데 그 이상으로 시간이 넘어가면서, 또 고양이와 함께하면서 더 이상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렇게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져 요즘은 10시 내외로 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한 지가 1년이 넘어가고 있다.(보고 있나 노동청, 보고 있나 인사팀)


같은 곳에서 일하고 조직에 대한 이해가 깊은 아내는 남편의 그런 생활이 정말 괴롭다. 남편 팀의 사정을 이해 못하면 닦달이라도 할 텐데 나는 남편 탓도, 팀 탓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남편의 퇴근 소식만 기다릴 뿐. 나 먼저 퇴근해 집에 혼자 돌아오는 게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쓸쓸했는데 이제는 저녁에 혼자 생활하는 게 익숙해져 간다.


집에 와 고양이와 놀아주고, 저녁을 먹고, 집을 한번 싹 치운 후 글을 쓰던 책을 읽고 있을 때면 핸드폰이 울린다.

"오! 퇴근했나???"

애써 무덤덤하게 저녁 일과를 보내고 있던 나는 그 순간 기쁨으로 가득 찬다! 퇴근 소식이 울린 후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그래도 나는 서둘러 기분을 가다듬는다. 일 년 전만 해도 이 시간에 울리는 퇴근 소식이 서운하고 아쉬웠는데 말이다. 마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남편의 퇴근 소식에 길 들여 저버렸다. 현관문이 열리기 한 시간 전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집 안에 공기가 따뜻해진다. 지친 눈으로 웃으면서 (내가 아닌) 치코를 부를 때면 아빠를 보러 달려 나가는 치코를 따라 나도 뛰어나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은 몇 시에 알람이 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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