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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 Sep 17. 2019

탱크 지나가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미안, 내가 귀가 좀 약해가지고 말이야

소리만 듣고 어떤 음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절대 음감이라도 가졌더라면 덜 억울했을 텐데 나는 음악적 재능 없이 귀만 예민하다. 큰 소리에만 말이다. 웃기는 것이 또 작은 소리는 잘 못 듣는다. 주위 사람들은 웬만하면 알고 있는데 나는 꼭 보청기 낀 사람처럼 한 번에 말귀 못 알아듣는 걸로 유명하다. 꼭 다시 물어본다.

그냥 데시벨이 큰 소리에만 예민하게 반응한다.


교복을 입을 때부터 나는 제일 싫어하는 선생님이 '소리 지르는' 선생님이었다. 나무 막대로 탁자를 '탁! 탁!'치면서 무언가 설명하는 선생님도, 훈계를 한답시고 큰소리를 내는 선생님도 싫어했다. 확률적으로 위 같은 행동을 하는 선생님들이 학생들 말에 귀 기우릴리 없어 그냥도 싫어했지만 특히나 큰 소리 내는 행동을 싫어했다.


어림짐작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렸을 적 트라우마라도 있었나 싶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엄하고 고지식한 부모님이시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시지도 않았다. 존재 자체로도 무서운 아버지는 사실 큰 소리 낼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청력에도 문제가 없지만 그냥 큰 소리 나는 걸 싫어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큰 소리는 항상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딱히 성격이 예민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내 짝꿍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흥분도 하고 그러다 보면 목소리가 커질 수 있지 않은가 싶지만 내 앞에선 꼭 지적을 당한다.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상관없이 목소리가 커지면 항상 '왜 화를 내냐며' 따지고 드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목소리가 큰 시부모님 밑에서 자란 남편이 내 앞에서 기를 못 편다.(미안) 아 참, 그렇다고 내가 소리를 안 지르는 건 아니다.


꼭 사람 소리가 아니라도 크게 틀어놓은 TV 소리, 남들이 크게 떠드는 소리까지 예민하게 군다. 쪼금만 크게 떠들어도 '조용히 해!!!'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 가끔 엄마가 '너 그거 병원 가봐야 해'라고 혀를 끌끌 차기까지 한다.(그냥 조금만 더 작게 말하면 될 텐데.)


요즘 큰 소리 들을 일이 거의 없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꼭 이어캡을 챙겨야 했다. 거실에 아주 큰 소리로 틀어놓은 TV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독립해 짝꿍이랑 함께 자는 요즘도 가끔 이어캡 챙긴다. 가끔씩 침대 옆에서 탱크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잘 자고 있는 코를 막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여보! 그래도 잠자는 여보 손 참 기여워.(땡크 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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