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담임목사님의 설교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아마도 현대 개신교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한 내 글을 보신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단이라 불리는 집단들조차 모두 개신교 안에서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들을 ‘왜곡’과 ‘외면’이라는 이름으로 잘라내기에 바쁘다.
정면으로 비판받아야 할 것은 오히려 개신교 내부이고, 젊은 세대가 몰리는 교회는 대부분 이단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개신교의 민낯이며 추세다.
논리, 이성, 철학을 오랫동안 외면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개신교가 사람들을 잃어가는 이유는 명백하다.
아니, 명명명백백백하다. 세 글자를 반복해 던져도 의미가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분명하다.
목사 세습과 바리새적 권력 구조, 교회의 사유화, 깊이 없는 설교,
현대 과학·철학과 충돌하는 신앙 구조, 일반 사회와의 불통, 기독교인들의 뿌리 깊은 위선,
전도 상황이 아니면 일반인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성직을 직업처럼 바라보는 젊은 목회자들의 태도까지.
나는 실제로 이런 전도사를 보았다.
주 2일 일하고 100만 원밖에 받지 못한다며 불평하면서,
결혼식에서 ‘돈을 많이 못 땡기면’ 서울의 큰 교회에서 버티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나도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결혼할 배우자의 아버지는 감리목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사람.
처음에는 그저 감리교 내부에서 목회자 자녀들을 전략적으로 채용해 입지를 다지는 정도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화를 깊게 나눌수록 상황은 가관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마음속으로만 회개하면 주님이 용서해 주신다고 믿는 것인가?
성경은 회개를 ‘실체적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전도사가 강원도의 작은 교회 같은 곳에서 실제로 사역하지 않는다면,
교회든 그 전도사든 ‘회개’를 그냥 합리화로 둔갑시키는 셈이다.
성직을 선택한 것인지, 직업을 선택한 것인지 스스로를 직면하게 할 시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이 좋을 테고, 장인어른은 감리목이니까.
이 문제는 단지 그 사람 개인의 태도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런 합리화는 교계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교회는 이제라도 성직자들에게 ‘회개’라는 말의 무게에 걸맞은 자리와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그 전도사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성직자의 본질을 드러낼 마지막 시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회가 그에게도, 교회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