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백 명의 대학 합격자가 학교폭력 전력으로 입학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19살 남짓한 나이에 사회적 낙인이 찍혀, 시작선에 서보기도 전에 뒤처진 듯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의 학교는 더 이상 선생님과 학생의 사랑과 신뢰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라기보다, 정부가 만든 ‘대학 입시 생산 시스템’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복잡한 리스크가 많은 학교라는 공간 대신 자퇴 후 더 평온한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 법도 하다.
20세 이전은 누구에게나 사춘기이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완전히 뿌리내리기 전의 시기다. 반항심도 많고, 감정도 쉽게 요동친다. 그 나이의 그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비추어 보면 미성숙했고, 지금의 잣대로만 보면 ‘잘못된 선택’의 연속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걱정이 된다.
이 학생들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낙오자처럼 취급된다면, 사회적 분노와 반항심이 더 커져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까. 혹은 상처가 더 깊어져 너무 일찍 삶을 포기해버리지는 않을까.
지금의 공교육은 사랑과 성장보다 성적과 경쟁, 그리고 대학이라는 결과 중심의 ‘거래적 구조’로 움직이는 듯하다. 스스로를 탐색하고 행복을 배워야 할 시기임에도 사회는 먼저 낙인을 찍는다. 이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학교폭력은 결코 옹호될 수 없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잘못만으로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는 방식이 과연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까? 나는 그 점을 우려한다.
아이들이 실수하더라도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로, 최소한 두세 번의 기회는 주는 것이 사회적·윤리적으로도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