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와 가까웠었던 누군가에게 “그들에게 너무 감정적으로 다그치지 말아달라”는 말을 들은 뒤, 오랜만에 나의 사회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첫 번째 대기업에서는 학창 시절의 왕따 경험과 군대에서의 부적응이 겹쳐 사회생활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다. 그마저도 군대에서 도와준 은인이 있었기에 완전한 부적응은 아니었지만, 남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사회성을 나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지능이 과하게 높으면 오히려 사회 적응이 어렵다는 말처럼, 나 역시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타입이었고, 행복과 지능은 별개의 문제라는 걸 그 시기에 깨달았다.
그렇게 3년간의 대기업 생활을 지나, 경쟁과 조율, 사람들의 불쾌지점을 익힌 뒤 두 번째 회사로 갔다. 그곳에서는 ‘완벽한 사회생활을 한다’는 칭찬까지 받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조직에 스며들었다. 입사 몇 개월 만에 팀장에게 칼을 겨눌 만큼 업무에서도 두각을 드러냈지만, 회사 사정 악화로 연봉 협상이 무너져 결국 회사를 떠났다.
그 당시 나는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었다.
말은 최소화하고, 일을 빨리 끝내도 “더 주세요”라고 하지 않으며, 옆 사람이 힘들어할 때는 그들의 일을 가져와 대신 해줬다. 그래서 남들은 야근할 때 나만 칼퇴근을 하곤 했다. 이것은 ‘좋은 원칙’이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안 좋은 원칙’도 있었다.
남들이 욕하는 사람을 함께 욕하고, 트러블 메이커에게 일부러 맞서고, 회식이나 티타임도 남들이 미워하는 사람을 일부러 더 미워하는 척하며 참석했다. 사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다. 단지 내가 배운 사회생활이 그런 방식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따라 했을 뿐이다.
세 번째 직장은 내 마지막 회사생활이었다. 그때는 사회생활 자체를 하지 않았다. 사업에 필요한 역량만 미친 듯이 흡수하고, 그 역량이 완성됐다고 느끼자 회사 생활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대표와 트러블이 생겨 사실상 자발적 해고처럼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사업은 성공했다.
지금은 그때의 사람들과 거의 연락이 닿지 않는다. 내가 사업을 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누군가가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없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작은 성공은 축하하지만, 자기 기준으로 가질 수 없는 성공은 질투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가까이서 봤다. 처음엔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지만, 나중엔 “저렇게 살면 정말 편하구나”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편안함은 달콤했고, 담당 매출은 계속 올랐으며, 대표는 종종 나를 불러 “회사 전체를 맡길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어제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과거의 나를 다시 들여다보니 조금 누그러졌다. 그들의 미성숙을 지나치게 미워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충분하지 않고,
그저 죽지 않을 만큼만 버티며 퍽퍽하게 살아간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다시 한 번 과거의 나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