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에 대한 고찰

by 삶 집착 번뇌

목사와 전도사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들은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몰라도 아는 척하는 태도를 기본 원칙처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 사람들이 “목사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친한 줄 알았는데 모른 척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다. 심지어 “성직자들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아냐”는 말을 들을 때면 항상 의문이 들곤 했다.

그런데 영업을 오래 하며 비언어적 신호에 민감해지다 보니, 알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번에 대화를 나눈 전도사와 목사 역시 내 글을 읽었다는 흔적, 서로 사이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가능성, 내가 미러링을 통해 던진 메시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모습,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가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가 분명히 보였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패턴을 보면, 그들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문화가 일반인 눈에는 위선으로 보일 수밖에 없고, 동시에 내부에서 서로를 감싸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이유도 그 지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는 “여긴 사회와 다른 곳”이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지만, 정작 스스로 아버지가 목사라 가업을 잇는 중이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했다. 내가 과거 목사 세습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글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전도사는 “요즘은 목사 세습이 당연한 게 아니다”라고 변명했지만,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회든 사회든 본질적으로는 그다지 다르지 않으며, 폐쇄적인 구조는 오히려 내부 부패 가능성을 더 키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순결한 교황제나 1인 카리스마로 운영되는 종교 체계가 오히려 더 투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부에서 감시와 견제가 불가능할 만큼 폐쇄적이기 때문에 부패가 커지는 것이고, 반대로 절대적 권위 아래서 스스로의 순결성을 지키려는 체계가 더 깨끗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사가 반복해서 말한 “여기는 사회가 아니라 교회”라는 말에 대해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왜 월급은 사회 기준으로 받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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