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까웠던 그의 어이없고 경솔한 말에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처음에는 ‘영포티’를 단순히 젊어 보이려는 40대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했는데, 실제로는 회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는 40대를 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불쾌했다.
그가 ‘영포티’라는 말과 함께 내가 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식의 말을 하길래, 나는 그가 자신의 위치와 나의 위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교육이라는 마음으로,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돌아가는지 알려주기로 했다.
사회라는 공간에는 분명히 위와 아래가 존재한다. 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면 매 순간 오해가 생기고, 관계에서도 계속 헤매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상사를 불러 그의 앞에서 차분히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순서대로, 구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상사 앞이라 꾹 참고 있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모습은 그가 처한 위치를 스스로 체감하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그는 나의 과거 실수를 지적하려 했지만, 이미 해결된 부분이었고, 같은 문제가 다시 일어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다. 다만, 지적받는 자리에서 되받아치려는 그의 미성숙한 태도를 보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해 다른 공간으로 도피했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현실의 축소판을 마주하게 된다. 이미 선택한 방향을 되돌릴 수 없다는 무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점점 작아지는 자존감, 그리고 누군가의 바짓자락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스스로를 지탱하기 힘든 불안감이 그들을 짓누른다.
그래서 ‘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말을 하던 누군가에게, 사회 시스템을 활용해 상처 주는 행동은 아마 다시 하지 않을 것 같다.
현실 자체가 이미 그들에게 충분히 가혹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