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산다는 건 뭘까.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좋은 말만 건네는 것이 착함인지,
아니면 상대가 꼭 들어야 할 말을 용기 내어 말해주는 것이 착함인지,
나는 그 경계에서 자주 멈춰 선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페르소나를 바깥으로 내놓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은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숨기고,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장한다.
특히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그렇다.
외향적이지 않아도 외향적인 척,
내향적이지 않아도 내향적인 척해야 한다.
조직이라는 커다란 집에 벽돌 하나처럼 끼워 넣기 위해
스스로의 모서리를 갈아내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어떤 사람은 차라리 ‘사람’으로 남으라며 말을 아낀다.
시간이 지나고 가족이 생기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면 더 높은 자리, 더 단단한 위치를 향해
나를 벽돌처럼 갈아 넣는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성장해야 하는 존재다.
눈치 없는 20대를 보냈더라도
언젠가는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사회는 눈치 없는 20대는 용서해도
눈치 없는 30대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 생긴다.
눈치 없는 30대를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 진짜 착함일까?
아니면 그를 대신 보호해주며 현실의 냉기를 막아주는 것이 배려일까?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려다가
때로는 필요한 말에서 도망치는 겁쟁이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상처받을까 봐 말하지 않지만,
사실은 우리가 상처받기 싫어서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착한 사람인가,
아니면 착하기만 한 겁쟁이는 아닌가.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철학이라는 숲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