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능력의 부재

by 삶 집착 번뇌

대한민국 개신교는 지금 조용히 쇠퇴하고 있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상위 10% 규모의 대형 감리교였고, 조직 구조와 재정 시스템도 갖춘 교회였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 흐름을 보고 있으면 변화의 조짐보다 붕괴의 전조가 더 가까웠다.


어느 순간부터 설교 속 핵심 단어는 예배나 은혜가 아니라, 전도와 헌금으로 바뀌었다. 십일조를 강조하며

“3일 만에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교회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전도사의 태도는 신앙의 초대가 아니라 조건부 참여 선언처럼 들렸다.


담임목사 역시 설교 중 물질과 책임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이 어려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전도가 되지 않으니 신도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사람이 떠나니 남은 사람에게 책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쳤다.


> “왜 스스로 전도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는가?”




전도는 신도에게 떠넘기는 의무가 아니다.

교회가 연구하고, 실험하고, 설교와 콘텐츠와 메시지를 통해 스스로 해답을 제시해야 하는 영역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단순히 “믿으라”는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질문하고, 비교하고,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 시대에 전도는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설득의 기술이다.


그러나 많은 교회는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


반복되는 단선적 설교


현실과 단절된 메시지


‘신앙=복종’이라는 전제



이 방식은 이미 확신을 가진 소수에게만 효과가 있을 뿐,

대다수의 현대인에게는 설득력도 매력도 없다.


전도가 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악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더 이상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남을 교회는 단순히 “신도 보고 데려오라”고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찾고 싶어지는 메시지를 만들고


현실과 연결된 언어로 소통하며


지적·심리적 필요에 답을 제시하고


신앙을 삶과 연결된 철학으로 제시하는 교회일 것이다.



교회는 이제 전도를 명령하는 시대가 아니라,

직접 구현하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전도는 교회가 신도에게 강요할 과제가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 능력이다.


전도를 의무로 요구하는 교회는 이미 시대에 뒤처져 있고,

전도할 수 있는 메시지·언어·시스템을 스스로 구축하는 교회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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