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목사들의 설교를 듣다 보면 묘한 공통점을 느낄 때가 있다. 내용은 깔끔하고, 구조는 잘 정리되어 있으며, 전달도 매끄럽다. 문제는 그 매끄러움이 지나치다는 데 있다. 마치 온라인에 떠도는 대표적인 설교들을 취합해 정리한 듯한 느낌, 어디선가 이미 여러 번 본 문장들이 조합된 듯한 인상이다.
물론 나 역시 AI를 쓴다. 다만 방식에는 분명한 선을 두고 있다. 글의 95퍼센트 이상은 직접 쓰고, 마지막에 표현이나 호흡을 다듬는 데에만 AI를 활용한다. 생각과 판단은 내가 하고, 정리는 도구에 맡기는 식이다.
그런데 요즘 설교를 듣다 보면, 그 경계가 흐릿해진 경우들이 눈에 띈다. 내용도 깔끔하고, 정리도 깔끔하며, 정보 역시 온라인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잘 모아 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설교를 다 듣고 나와도 ‘잘 들었다’는 감상은 남지만, ‘이 사람의 말이다’라는 감각은 쉽게 남지 않는다.
문득 나 자신에게도 질문하게 된다. 나 역시 글을 처음 쓸 때는 저런 방식이 아니었을까. 초창기에는 AI와 대화하듯 생각을 풀어내다가, “이 구간부터 여기까지를 하나의 에세이로 만들어볼까?” 하는 식으로 글을 이어 갔다. 지금은 방식이 달라졌다. 먼저 1,500자 정도를 자유롭고 거칠게 쓴 뒤, 그 글의 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다듬는다.
AI로 쓴 글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 지나치게 매끄럽고,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어서, 그래서 어딘가 부드럽기만 하다. 가끔은 나도 일부러 공격적인 어조나 비판적인 표현을 줄이지만, 그럴 때조차도 문장 속 호흡과 숨결만큼은 남겨두고 싶다. 글에는 사람의 흔들림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AI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라면, 설교 영상 요약만 봐도 이게 AI가 만든 흐름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설교 영상을 AI로 텍스트화해 놓으면, 20개가 넘는 설교도 1시간 반 만에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한 편 한 편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구조와 논조, 반복되는 표현만으로도 그 설교의 성격은 충분히 드러난다. 기술은 이미 그 지점까지 와 있다.
AI를 쓰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고, 거스를 이유도 없다. 다만 최소한 주제만 던져 놓고 사고 과정 대부분을 AI에 맡긴 채 완성된 설교라면, 그것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에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설교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한 사람이 씨름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그 과정이 생략된 채 완성도만 남는다면, 아무리 깔끔해 보여도 어딘가 비어 있는 설교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