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

by 삶 집착 번뇌

교회를 나가지 않은 지 2주가 되었다.

온전히 내가 나로 돌아오고 있는 듯한 느낌에, 묘한 안심과 묘한 불안이 동시에 나를 짓누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어제는 그 피아노 선생님의 따님이 결혼을 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나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누나, 누나 하며 가끔 만나 함께 놀곤 했고, 그 집 막내아들과는 어릴 때부터 가까운 듯, 또 멀 듯한 절친이었다.


자주 보지는 않지만, 만나면 누구보다 반가운 사이. 두 살이 많은 탓에 아직까지도 나에게 존댓말을 쓰는데, 이제 와서 고쳐 달라 하기도 어색해 그냥 두고 있다. 그 집 식구들과 우리 집 식구는 가족처럼 지내왔다. 우리 가족의 성격이 유난히 좋아서라기보다는, 그쪽 가족이 우리를 많이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 가족이 모난 편은 아니지만, 그 집은 우리보다 훨씬 둥글둥글하다. 그 누나가 시집가는 모습을 보며 문득, 20대 초반에 종종 함께 술을 마시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만큼 이성과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면, 나는 지금 자녀가 있었을까—그런 생각도 스쳤다.


여자가 남자와 술을 마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안다. 특별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 감정 없이 마시지는 않는다는 것. 밥을 먹자고 먼저 나오는 일 또한, 이성적인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신호라는 것도.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 애써 감성적인 사람들과 엮여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던 시간들도 사라졌다. 어쩌면 나는 지금 사회적 디톡스를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 그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다.


나로 돌아오자 웬만한 스트레스는 거의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인지 글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 두고 온 마음, 그리고 함께 가져온 마음 한구석이 유독 허전하다.


이별을 하지 않았는데 이별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것인지—나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영성의 길인지, 사업의 길인지, 혹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길인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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