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이나 대시를 받는 일

by 삶 집착 번뇌

스무 살 무렵부터 유난히 고백이나 대시를 받는 일이 잦았다.

남중, 남고, 공대, 군대까지 이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온 나는 20대 초반까지도 그 사실을 거의 자각하지 못했다. 다만 10대 후반, 매일 3km 남짓한 거리를 걸어 다닐 때마다 옆 여고 학생들 사이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전해 들었을 뿐이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의 고백이나 대시를 여러 차례 받아왔다. 다만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상대의 감정만 앞세운 방식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아 늘 불편함이 남는다. 그 순간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정도의 배려라면, 연애 이후의 관계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그 탓인지 의도하지 않아도 호감을 받는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된다.

“몸 좋은 사람이 좋아요.”

“성경 잘 아는 사람이 좋아요.”

“키는 이 정도만 넘으면 돼요.”

이런 말들은 언제나 나를 직접 겨냥한 것처럼 공중에 떠 있다.


교회 안에서는 의도적으로 접점을 만들지 않으려 애썼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3년 동안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먼저 밥을 먹자고 한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교회를 그만둔 이후에는 여성들과 술자리를 갖는 일이 종종 생겼다. 1대1로 마주 앉은 자리에서, 내 얼굴을 보며 “당신 같은 스타일의 남자가 좋다”고 말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묘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아니라,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떠오르는 다른 누군가에게.


누군가에게 고백이나 대시를 받는 일은, 사실 타인의 마음을 듣는 일이기보다는 내 마음을 비추는 일에 가깝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오만 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 여성들을 만나러 나갈 때, 정작 그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

누군가를 잊기 위해 나가본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잊는다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높고 단단한 벽이라는 사실이, 매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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