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후반 무렵, 성경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성경공부를 하는 모임’이라는 말만 듣고 한 곳을 따라간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철학적인 이야기나 삶의 태도에 관한 대화가 유독 재미있었고, 사람들과 모여 보드게임도 하고 성경공부도 한다는 말에 큰 경계 없이 참여했다. 꽤 흥미로운 시간들이었다.
사람들과 조금씩 엮이기 시작하고 성경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묘한 일들이 겹쳐 일어났다. 어느 날은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다가와 “누군가가 항상 당신을 돌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고, 또 어떤 날은 말끔한 차림의 사람이 와서 믿음을 강하게 요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신천지였다. 추수꾼은 대략 세 명 정도였고, 그들은 “믿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를 압박했다. 그 과정은 1~2주 정도 이어졌고, 늘 “오늘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말하면 복이 다 날아간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평소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자주 나누던 나는, 무의식중에 이 일을 꺼냈다. 어머니는 단번에 “그거 신천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천지이든 아니든, 나는 그 모임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과 멀어지는 건 아쉬웠지만, 부모님이 그렇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계속 다니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돌이켜보면, 그 모임은 신앙이라기보다 일종의 재미였고,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도피처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을 둘러싸고 “이게 진짜 현실이다”, “네가 알고 있는 세상은 틀렸다”고 반복해서 주입하면,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나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전도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늘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널 위한 거니까 그냥 믿어라.”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그냥’이라는 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고, 나는 그 인과가 설명되지 않는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것이 내가 말하는 자의식일 것이다.
이 자의식은 신을 부정하려는 오만이라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믿음 앞에서 쉽게 나를 맡기지 못하는 성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아마 평생 전도되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나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부모와 동료부터 끊임없이 의심하는 나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 믿음은 쉽게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반면 불교의 설법은 비교적 잘 맞는다. 불교는 무언가를 반드시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신이 필요하다면 신을 내어주고, 성찰이 필요하다면 마음을 돌아볼 자리를 내어준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나를 몰아붙이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논리와 이치의 측면에서도, 현대사회와 비교적 자연스럽게 접속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만 문제는, 내가 고통을 꽤 즐기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불편함 속에서 버티며,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데서 오히려 생기를 느낀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 안에서 느끼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나에게 맞는지, 아니면 불교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더 맞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이 부분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