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영포티’라 부르던 어느 광신도 같은 전도사를 두고, 그를 꾸짖던 날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그날 나는 기분으로 말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하라. 최소한 가르침으로 대하라는 그의 당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 너머에서는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그 탓인지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역겨운 말들로 그를 몰아세우고 말았다.
“걔가 제 말을 들을까요?”라는 그의 말에
“듣든 말든, 아래 사람 관리 못 한 본인도 오셔야죠.”
나는 그렇게 부목사를 불러냈다.
돌이켜보면 지난 7개월 동안, 나는 전도사의 열등감과 질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성공은 세상에서는 대수로운 일일지 몰라도, 막상 도달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도,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재산과 월수입을 반복해서 묻던 그의 태도는 십일조를 강요하고 싶었던 것인지, 열등감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선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자잘한 상처들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사역은 첫 출석한 날부터 이미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과 긴장은 처음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영포티 사건은 원인이 아니라, 이미 쌓여 있던 것들이 드러난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12월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영포티’라는 말은 그 모든 것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나는 어려 보이고 싶은 마음도, 나이 들어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주변의 동료 어른들 역시 나를 더 이상 20대나 30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은 내 상처들을 한꺼번에 건드렸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충고를 했다.
“목사 하지 마세요. 누군가는 당신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 만큼 상처를 입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렇습니다.”
그 순간, 목사의 입에서는 “지금 모습이라면…”이라는 말로 그 전도사를 감싸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그는 간절히 자신의 말을 동의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선을 넘지 못했다.
이후 수없이 성찰해 보았다.
그 말은 정말 그 전도사를 위한 말이었을까. 어쩌면 더 나아갔을 때, 그의 꿈을 짓밟았다는 나 자신의 죄책감을 지키기 위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 목사는 이 정도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있었기에 나는 내 마음의 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세습목사였고, 나는 그를 향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세습목사’라는 단어를 쉽게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 그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미운 부하를 위해 사랑과 기도, 그리고 보호를 선택했다. 동시에 내가 선을 넘지 않도록 자신의 몸으로 막아주었다. 그 순간 그와 내가 교회의 직원과 기업의 대표가 아니라, 나보다 몇 살 위의 한 형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나는 그 세습목사를 영성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