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서 겸손으로

by 삶 집착 번뇌

크리스마스이기도 하고, 오전에 특별한 일정도 없어 교회에 다녀왔다.

간만에 들은 설교는 과학과 철학, 현대신학이 엮인 꽤 수준 높은 내용이었다.


담임목사님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의도적으로 칼을 갈고 오신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정도의 깊이를 지니고 있으되 평소에는 신자의 수준에 맞춰 설교해 오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젊은 목사들의 AI처럼 매끈하지만 공허한 설교와는 차원이 다른 결이 느껴졌다.


설교는 ‘용서’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하이데거의 개념들이 섞여 나왔는데, 사실 나는 이렇게 철학자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차용하는 설교나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념이 살아 있기보다 장식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맞닿는 지점을 조심스럽게 끌어왔을 때,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내가 은근히 무시해 오던 성직자들의 지적 깊이가 이 정도임을, 강단 위에서 나를 조롱하듯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늘 좋은 퀄리티의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듯, 늘 좋은 설교를 준비하는 일 또한 얼마나 고달픈 작업일까. 오늘 설교에 등장한 개념들이 의도적으로 끼워 넣어진 것인지, 아니면 체화의 단계를 거쳐 담임목사님의 언어가 된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차용’이 아니라 ‘소화’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평균적으로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 판단 자체를 완전히 거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 설교만큼은 달랐다. 설교의 표면적 주제는 “너그럽게 용서하라”였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그만 오만해라.”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영성 : 세습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