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타락에 관하여

by 삶 집착 번뇌

대개 자녀가 있는 성직자는 부패하고, 자녀가 없는 성직자는 타락한다.

잘못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문제라 쉽게 욕하기도 어렵다.

부패와 타락의 차이를 굳이 구분하자면 이렇다.

타락은 개인의 추락이고, 부패는 공동체에 피해를 남긴다.


예컨대 여러 사람이 모은 헌금에 손을 대거나, 공동의 사역을 사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부패다.

반면 혼자 감당하는 일탈이나 은밀한 추문은 타락에 가깝다.

전자는 구조를 좀먹고, 후자는 인간을 무너뜨린다.


부패는 대개 능력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스스로 감당할 힘이 없는 자가, 권력과 명분을 빌려 부족함을 메우려 할 때 부패는 시작된다.

반면 타락은 고독을 견디지 못한 끝에서의 추락에 가깝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자신을 붙들지 못할 때,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부패와 타락이 보편화되었다는 말은

이 사회의 다수가 무능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고독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지금도 가난은 가난을 부르고, 부는 부를 부른다.

그렇다고 위로 올라갈 길이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눈에 잘 보이는 문은 늘 너무 높은 곳에 있고,

사회 곳곳에 숨겨진 문들은 손을 더듬으며 찾아가야 한다.

그 길에 독사가 있을지, 덫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로 오르기보다

아래에서 위에 있는 사람을 욕하는 데 더 익숙해진다.


자녀를 위한 부패 역시 대부분 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나는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결핍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핍이 있어야 갈망이 생기고,

갈망이 있어야 스스로 살아가려는 힘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 한다.

자녀를 제2의 자신처럼 여기며 최선을 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좋은 대우를 할수록 자녀는 결핍을 배우지 못하고,

그럴수록 삶을 밀어낼 동력을 잃어간다.


이 지점을 깨닫지 못한 부모는 결국

자신이 이만큼 해줬으니

자신의 기대와 소원을 들어달라는 듯

자녀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것이다.

고로 부모는 자녀에게 결코 투명한 사랑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의 사랑을 닮았다는 하나님 역시

이 세상에 인간의 욕망을 투영받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결핍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흔히 타고난 조건이 좋은 사람일수록

삶에서 결핍을 일찍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때로 갈망의 부재로 이어지고,

갈망의 부재는 노력의 방향을 흐리게 만든다.

반대로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 중에는

그 결핍을 동력 삼아 더 멀리 나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이 결핍을 통해 단련되는 존재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상대적인 진리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

자녀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아도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부패하는 성직자 역시

자녀를 위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 있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잠식해간다는 사실도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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