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떤 친구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스펙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다가,
그 나이에는 스펙이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데
혹시 그의 결핍을 건드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쳤다.
성직자가 하는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실 거야”
라는 값싼 위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역할은 철학자에 가깝다.
경제지식과 금융상식은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위로다.
나 역시 스펙이 쌓이기 시작한 시점은
24살 무렵이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다.
인생 전체로 보면 조급해할 이유는 없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제지식과 금융상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1년이라도 더 빨리 알고,
1년이라도 더 이른 시기에
작은 돈을 잃어보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
그 학습 속도가 인생의 밀도를 바꾼다.
경제지식과 금융상식이 있으면
굳이 대기업에 가지 않아도
대기업 사원보다 윤택하게 살 수 있고,
백수보다 한가롭게 살 수도 있다.
물질뿐 아니라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의 주식 스승은
지금 충청도에서 하루에 운동을 다섯 시간씩 하며 살고 있다.
부자이지만 여전히
‘눈에 차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눈높이에 맞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지식과 금융상식을 통해
삶에 여유가 생기면
사람은 다시 구도자가 된다.
개신교적 언어로 말하면
하나님을 갈급하게 되는 상태이고,
나 같은 무신론자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다만 그 친구가
그날 조금만 더 질문하고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면,
나는 좋은 조언자나
금융 선후배가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세상에는 반드시 일찍 시작해야 하는 진리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투자,
둘째는 사업.
둘 중 하나만 선택해도 충분하다.
리스크 통제만 배운다면
시간은 복리라는 마법을 부려
조용히 돈을 벌어다 준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힘은 더 커진다.
마지막으로
그 친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여기 남겨본다.
“금융상식과 경제지식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
지금은 스펙과 지식을 쌓아라.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하나님을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