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앙이 옳다는 것을 우기듯, 내게 화를 내며
“3일 뒤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교회에 오지 말라”고 말하던 한 전도사가 문득 떠오른다.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쉽게 무릎 꿇지 않는 나를
그는 반드시 ‘전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 같다.
역사적 인물인 바울조차 스토아 철학자들을 전도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전도사가 나를 전도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웃기지도, 대단하지도 않았다.
내가 “왜 나는 죄인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온전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성경에 죄인이라고 나와 있어서 죄인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철학과 신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앙은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진리이고,
철학은 이성이 모여 만들어진 진리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대체로 사이가 좋고,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싸운다.
반응부터가 다르다.
“이것 좀 부탁해?”라는 말에
신앙인은 “이것도 하나님이 시키신 건 아닐까?”를 먼저 떠올리고,
철학자는 “내가 왜?”라는 질문부터 던진다.
이 차이는 회사 생활에서는 꽤 많은 고통을 수반했다.
제목은 마치 철학이 신앙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신앙이 훨씬 따뜻하고 정이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신앙과 철학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토론은 이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은 철학을 이길 수 없다.
변증을 즐겨하던 바울조차
변증을 통해 철학자를 ‘이기려’ 하지 않았다.
철학자들은 끝없이 “왜?”를 물었을 것이고,
바울은 그 질문들에 이성으로 완결된 답을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앙이 철학을 이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신앙이 애초에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은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고,
태도로 전하는 것이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쳐가는 사람에게 한 번 더 사랑을 건네는 것,
그렇게 나누어 가는 것이다.
신앙은 철학처럼 본질을 묻지 않는다.
살아내는 방식 그 자체로 답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던 그 전도사에게
‘신앙이란 이런 것’이라고
머릿속에 한 번 세게 때려박아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