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학생들이 구조적으로 소모되는 모습이 안타까워
‘신학생 커뮤니티를 만들어볼 수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사업계획서를 하나 작성해 친한 신학생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나는 목사를 성직자로 보지 않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 아래에 있는 신학생들이
‘믿음’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여
부당한 노동과 감정 소모를 감내하는 구조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그 계획서를 본 신학생은
전도사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고,
그 결과 돌아온 반응은
“신천지에서 온 거 아니냐”는 낙인이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들이 말하는 ‘신학적 권위’가 대체 무엇인지
하나씩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그 신학생과 전도사가
바퀴벌레보다 혐오스러웠고,
인간적으로 소름 끼치게 싫었다.
조금 더 파보니
신학생은 사실상 무관했고,
문제의 핵심은 전도사였다.
교회 내부 평판도, 업계 내 평판도
이미 최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 전도사는
자신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고,
교회 안에서 자매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사실상 중매를 선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광신도가 아니면 기독교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연인이 있음에도
“여자들이 나를 안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열등감을 드러내는 모습도 여러 번 목격됐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신천지 낙인을 찍어 놓고
“그래도 교회는 계속 다녀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마치
“내가 있는 불구덩이로 같이 들어와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 사람은 절대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 실제로 신천지 교회에 다니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신천지 = 무조건 이단·사이비’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는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영성과 지혜로움은
내가 알고 있던 개신교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하나님 아니면 지옥이다”라고 외치는 개신교와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랑을 한 번 더 전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는 그녀.
두 태도는
같은 ‘신’을 말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개신교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영성’에 대한 이단적인 해석이다.
영성이란 본래 이타심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를 광신적인 믿음으로 둔갑시켜
설교하고 소비한다.
AI와 유튜브의 발달로
이 병폐는 더 이상 숨겨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가장 유능한 목사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사람을 잘 가스라이팅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책임을 잘 회피하느냐다.
어느 세습 목사에게
전도사 관련 문제를 일곱 가지 짚어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형제님이 말씀하신 문제 중 두 가지만 해당됩니다”였다.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자리에서
조목조목 짚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수준 낮은 목사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불과 3년 정도 교회를 다녔을 뿐인데도
이미 썩고 곪아버린 개신교의 병폐가
한눈에 보이는데,
도대체 이런 상태로
어떻게 새로운 신자를 유치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전도를 할 때 이렇게 말한다.
“개신교만 빼고,
다른 종교를 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