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몇 푼에 영혼을 파는 성직자들

by 삶 집착 번뇌

성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십일조와 교회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말이 과연 ‘교회에 나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까.


십일조는 돈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행위가 아니다.

회개는 헌금으로 죄를 씻는 면죄부가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권력자가 아니라 사랑과 나눔 속에서 관계 맺는 존재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두 사람이 모여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곳, 그곳이 교회다.


십일조 역시 돈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영혼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예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하나님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었다는 사실도,

교회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진실 중 하나다.


그럼에도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지 못하는 신도들을 상대로

십일조와 헌금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이 반복된다.


나는 확신한다.

많은 목사들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가 가장 혐오했던 존재,

성전 앞에서 대속물을 팔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신교는 이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석의 자유를 누구보다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강단 위에서 공포와 세뇌를 팔고, 직분과 권위를 거래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손목에서 피가 흐르는 대신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신약이 말하는 예수는 분명 존재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소원을 들어주는 하나님’을 팔고,

체험하지 못했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라 말한다.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성경 속 하나님과 정반대편에 서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몰락은 외부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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