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목표로 연애와 여성의 연애 심리를 철학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모든 남성과 여성이 본능적으로 이성을 원한다는 점에서, 연애는 생각보다 난해한 영역은 아니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만 더 거치면 내가 원하는 누군가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신앙에 가까운 막연한 확신도 생기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진중한 연애도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가벼운 연애를 해왔다. 그러다 문득, 진중한 연애가 과연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관계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관계가 이어졌던 경우에는, 오히려 상대의 노력이 더 컸다. 반대로 내가 의식적으로 애쓰고 밑바닥까지 드러냈을 때는, 여성들이 마치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 지점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 과연 그 여성들이 객관적으로, 혹은 정량적으로 나보다 ‘더 나은 선택지’였는가? 냉정히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조건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에서 하나의 가설에 도달했다. 여성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남자보다,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남자에게 더 강하게 끌린다는 가설이다.
나의 한계와 최대치를 모두 드러내는 행위는, 상대에게 나를 비교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고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듯했다. 반대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여지를 남길 때, 그 남자는 상대의 세계에서 쉽게 규정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줄수록 관계는 끝을 향해 가고,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을수록 상대의 집착은 깊어지는 장면들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이 구조는 인간의 도박 중독과 닮아 있었다. 확실한 보상보다, 불확실한 가능성이 더 강한 중독을 만든다. 연애 역시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 위에서 작동하는 게임처럼 보였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연애의 선택지를 많이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남성들의 장점을 조각처럼 모아 ‘이상형’을 구성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남자가 자신에게 깊이 빠졌다고 느끼는 순간, 그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경향도 관찰되었다.
이로부터 하나의 불편한 결론에 도달했다. 연애 경험이 많을수록, 오히려 결혼이라는 단일한 선택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가설이다. 그 지점에서 한때 구시대적이라고 여겼던 혼전순결이나 절제의 가치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연애를 깊이 파고들수록, 결혼 적령기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비교에 익숙해져 있는지, 그리고 그 비교의 끝에서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한 채 정체 상태에 머무르는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선택하지 못한 여성은 기회를 소모하고, 선택받지 못한 남성은 경쟁에서 밀려난다. 그렇게 연애의 장은 점점 더 냉정한 구조를 드러낸다.
여자는 선택하지 못할 때 도태되고, 남자는 선택받지 못할 때 도태된다.
그것이 지금 내가 관찰한 연애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