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애철학을 공부하며 새삼 깨닫는 것은, 글을 읽는 능력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여자의 심리, 관계를 깊게 만드는 방식, 연애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고작 6~7만 원 수준이라는 점은 꽤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온라인에는 연애 강의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거래된다. 같은 정보를 두고 누군가는 책으로 접근하고, 누군가는 강의에 의존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정보 접근의 문제가 아니라, 문해력의 문제라고 느껴진다.
여기서 말하는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능력이 아니다.
문장을 이해하고, 맥락을 연결하고, 정보를 자신의 판단으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글은 읽지만 의미를 쓰지 못하는 상태, 즉 기능적 문맹은 생각보다 흔하다. 정보는 넘치는데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역시 이 차이를 체감했다.
짧은 영업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구조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그대로 믿기보다 해석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직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고, 투자와 의사결정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판단을 이어갈 수 있었다.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차이는 더 분명해졌다.
AI는 정보를 대신 만들어주지만, 무엇이 의미 있는지 판단하는 역할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AI를 얼마나 빠르게 활용하느냐보다, 생성된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가 성장 속도를 결정한다. 이 지점에서 문해력은 다시 한번 강력한 레버리지가 된다.
물론 사회적 성공이 오직 독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사회성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험상, 사고력이 먼저 형성된 사람이 사회성을 학습하는 과정은 훨씬 빠르다. 이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분명히 느끼는 변화다.
한때는 특정 집단이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보이는 것은 단순해진다. 누구나 한두 가지 영역에서 강점을 가질 뿐이고, 그 강점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나는 문해력과 사회성을 어느 정도 함께 성장시킬 수 있었다.
연애와 결혼 역시 결국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삶의 영역 중 하나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클리어’하느냐가 아니라, 그 이후에 어떤 기준과 철학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다음 세대를 바라볼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 질문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독해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