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거룩

by 삶 집착 번뇌

최근 두어 달 동안은 특별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힘들 때 글이 잘 나온다. 그래서인지 글이 나오지 않는 지금의 상태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최근 연애와 잦은 술자리로 살이 꽤 오른 느낌이다. 더블로, 브이로 같은 시술 덕에 얼굴은 덜 부어 보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뱃살 관리에는 느슨해진 것 같기도 하다. 크로스핏을 접고 자전거를 타는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복근 운동이 줄어든 지금, 복부 지방이 늘어난 것은 어느 정도 영향이 있어 보인다.


두 달 반 만에 다시 진지하게 뱃살 관리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다이어트를 하면 생각이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배가 고프면 사업 걱정, 연애 걱정, 넓지 않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스며들듯 떠오른다. 어쩌면 금식은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고독은 꽤 괜찮은 자기 계발의 방식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수록 사업은 정리되고, 사유는 깊어지며,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된다.


최근 교회를 가지 않는 내 모습도 스스로 낯설다. 한때는 ‘선하게 사는 법’을 고민하며,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신앙을 증명하고 싶어 했던 시절도 있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크리스천보다 더 엄격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3일 후 부활’이라는 문장에 자꾸 마음이 머문다. 그것을 단순한 교리로만 받아들이고, 철학적 문장으로 읽어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볼 때마다 씁쓸함이 스친다. 신학을 공부하며 느낀 것은 이것이다.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확신하고, 독실함을 과시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연약할 수 있다는 점. 때로는 신앙이 신념이 아니라, 불안을 붙드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혼전순결을 말하던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한동안 살아왔다. 그것은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었을 수도 있고, 실패한 연애의 흔적이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감정이 가라앉고 보니, 교회 안에서 느꼈던 안정감은 신앙이라기보다 소속감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예수의 부활을 외치면서도 신점과 타로를 찾는 모습을 보면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하나님 중심을 말하면서 동시에 다른 초월적 존재를 의지하는 태도는, 신앙의 모순이라기보다 인간의 불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스스로를 선택받은 존재라 여기지만, 그 확신의 이면에는 설명되지 않는 두려움과 결핍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그들을 비판하기보다 가엾게 느낀다. 진리를 붙들고 있다고 믿지만, 어쩌면 가장 불안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거룩하다 말할수록 더 연약해 보이고, 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결국 크리스천이라는 집단은 이제 나에게 분노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불안을 신의 이름으로 감싸 안으려는, 다소 서툰 사람들의 모임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낯설지 않기에, 어쩌면 더 가엾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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