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연상의 그녀는 이혼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자존심마저 모두 내려놓은 채 내게 다가왔다. 이미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타인의 호의를 거절해 내심 지쳐있던 나는,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내치지 못했다. 사실 굳이 밀어낼 만큼 싫은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어물쩍 그 애정의 경계선 안에 머물렀다.
"자존심 안 상하세요?"
내가 처음 건넨 날 선 질문에, 그녀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자존심 상할 게 뭐 있냐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밤새 술잔을 부딪친 후, 우리는 꽤 괜찮은 누나 동생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내가 잠시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한동안 연락을 쉬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당시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했고, 곁에 남겨진 그녀는 무척이나 서운해했다.
시간이 흘러 짧은 연애가 끝난 후, 그녀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적지 않은 나이에 헤어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보조로 일하던 그녀는, 두 달 뒤 승급을 앞두고 연습 모델 50명이 필요하다며 내게 기꺼이 '시험작'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약속 당일, 샵이 바빠 밖에서 잠시 그녀를 기다려야 했다. 우두커니 서서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던 내 시선 끝에, 묵묵히 미용실 바닥을 쓸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걸렸다.
순간, 가슴 한구석으로 설명하기 힘든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이 왈칵 밀려왔다. 누군가 사랑의 마지막 형태는 연민이라고 했던가. 가슴이 아릿해지는 이 감정이 혹시 그것일까, 스스로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동시에 최근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나는 늘 그들에게 빈틈없이 단단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다. 홀로 내 삶을 책임지고 일궈내며 굳어진 생존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건, 완벽하게 포장된 내 모습이 아니라 기꺼이 내보이는 나의 약점과 흔들림이 아니었을까.
결국 사람들이 바라는 반려자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란 늘 강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무너진 채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 나의 등을 내어주고 상대의 등에 기대어, 이 거친 세상을 서로 맞대고 버텨낼 수 있는 동반자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생각의 끝자락에, 언젠가 친구가 내게 던졌던 말이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정말, 결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