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재현성

by 삶 집착 번뇌

​영어학원에서 한 대기업 연구소 부장님을 알게 되었다. 대화 도중 그분은 최근 부서에서 개발한 신기술 덕분에 회사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이 기술 하나를 팔아 과연 얼마의 수익을 남기는 걸까.

​“그 기술 하나의 가격은 어느 정도입니까?” 내 질문에 그는 덤덤하게 답했다. 건당 매각가는 약 350억 원, 원가는 약 250억 원 수준이라고 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이 돌아갔다. 5만 명의 직원을 둔 회사라면, 기술 하나를 팔아 남는 100억 원의 순수익으로는 고작 한 달 치 월급을 감당하기에도 벅차 보였다.


​“그 정도 수익으로 어떻게 그 거대한 조직의 인건비를 감당합니까?” 나의 의문에 부장님은 의외로 단순한 진리를 던졌다. “기술로 번 돈은 직원들 월급을 감당하는 수준일 뿐입니다. 기업의 덩치가 커지는 진짜 동력은 사업 수익이 아니라 자산에서 나옵니다.”


​그 말은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기업의 규모가 확장되는 본질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중은 기업이 오직 '사업'으로 돈을 번다고 믿지만, 실제 사업은 현금을 창출하는 장치일 뿐이다. 진정한 성장은 그 현금을 자본으로 치환하여 자산이라는 엔진에 태울 때 비로소 가속화된다. 즉,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업 뒤에는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구조를 깨닫고 나니 세상의 흐름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이행의 과정을 네 단계로 정리했다. [직장인 → 자영업 → 사업가 → 자본가]. 대부분은 직장이나 자영업의 단계에서 멈춘다. 사업의 궤도에 오른 이들 중에서도 벌어들인 현금을 자본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스스로 증식하게 만드는 단계까지 도달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사업을 지속하며 체감한 또 다른 사실은, 세상은 창업가보다 '자본가 2세'에게 훨씬 유리한 전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자수성가한 창업가가 부를 일구었을 때는 이미 40~50대에 접어든 경우가 많다. 그 시기의 에너지는 가정을 지키고 생활을 안착시키는 수성(守城)의 방어 기제로 흐르기 마련이다.


​반면 축적된 자본 위에서 태어난 이들은 자본이 선사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생존의 압박 없이 20대와 30대의 황금기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자산으로 사용한다. 설령 그들이 창업가만큼의 야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해 열등감을 느낄지언정, 자본이 만들어준 시간의 해자(Moat)는 그 자체로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실행의 난이도가 극도로 높은 시장에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자본이 주는 최고의 배당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오래전부터 코인, 주식, 원자재 등 다양한 시장에 발을 담가왔다. 초기에는 개별 기업의 성과와 지표에 매몰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관점은 변했다. 중요한 것은 개별 기업의 성패보다 '자본의 물줄기가 어디로 향하는가'였다. 산업의 흥망성쇠는 정해진 사이클을 반복하며, 그 흐름에 몸을 싣는 실험을 두 차례 거친 끝에 나는 확신했다. 자본 수익은 사업 수익의 속도를 압도하며, 흐름을 읽는 안목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수고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업을 통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 자본의 생리를 이해하고 더 뛰어난 시스템에 자본을 배분하는 것. 그것이 내가 도달한 가설이자 자본주의의 정답에 가까운 길일지 모른다. 결국 부의 핵심은 단발적인 수익이 아니라 **'재현되는 구조'**에 있다.


​사업은 돈을 만들어내지만, 자본은 그 돈을 스스로 복제한다. 아직 완전한 정답은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사유와 실험, 그리고 검증의 과정 속에서 나는 돈이 재현되는 원리를 체득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 조만간 나를 또 다른 차원의 성정으로 이끌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과분한 복은 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