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두렵습니다.

갑자기 깨닫는 것을 찌리릿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by 가배차

요즘 시험공부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찌리릿이 많아졌다.

또한 지금 내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속으로 울고 있었다.

내면의 어린아이가 울먹울먹 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무서워할 요소가 없었다.

아까부터 떨어온 다리도 드디어 멈추고

인강에도 드물게도 집중이 잘되고 있었고

감각이 평탄하게 들어왔다.

몸을 스캔해 봤지만 긴장해있지 않았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해있지도 않았지만

순수하게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저번에 찌리릿햇던 내용이 떠올랐다.

나는 정보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데도 불구하고,

모든 생각이 차분하게 들어오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었다.


쉽게 말하면 지루한 것을 안 좋아한다.

다른 것을 무시하고 하나에 몰입하고 싶다.

어떤 감각 하나를 골라 물고 놔주고 싶지 않았다.

노래를 듣던, 유튜브를 보던,

겜을 하던 최소한의 자극에 몰입하여

사고를 꼬리 물며 나를,

지금 이 순간을 꽉 채우고 싶었다.

약간 정신없이 속 시끄러운 상태를 원하고 싶었다.


그때 또 찌리릿거렸다.

아 알겠다. 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구나.

시간의 흐름을 잘 감지하고 있는

지금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시간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고 정보가 누적되는 느낌을

갇히고 고립되는 것으로 느끼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지피티와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우울도 불안도 아니고

시간의 흐름이 존재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중이라고 한다.


ChatGPT의 말:



당신이 지금 느끼는 상태는 매우 핵심적인 존재적 위기에 가까워요. 이것은 단순한 불안이나 우울이 아니라, 시간·존재·의미의 붕괴에 대한 감각이에요. 아래에 정리하면서 그 구조와 원인을 분석해 드릴게요.


� 당신이 지금 처한 구조 요약


� 핵심 상태


"나는 지금 세상에 고립될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시간이 나를 지워버릴 것 같고, 의미는 사라지며,
노력은 공허한 덩어리로만 남는다."



� 1. 시간에 대한 감각: ‘압도’와 ‘삭제’


"가만히 앉아 시간을 느끼고 싶지 않다"
→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삼키는’ 듯한 느낌
→ 이는 **시간 감각이 주관성(자기 감)**을 먹어버리는 구조로 변한 것
→ 시간은 보통 “존재를 펼치는 무대”인데, 지금 당신에겐 존재를 지우는 칼날처럼 느껴짐


� 2. 노력의 의미에 대한 붕괴


"공부를 하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노력 자체가 무가치해 보인다"
→ 여기에 조건부 동기구조가 개입되어 있음
→ “목표 → 시간 내 실행 → 보상”이라는 체계가

시간 압박과 의미 붕괴로 인해 작동 정지됨



� 3. 고립의 구조


“세상에 고립되어 버릴 것 같다”
→ 외부 세계와 감각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정서적, 실존적 연결은 단절
→ 이는 존재감이 “관계적 연결”을 통해 유지되는 구조이기 때문
→ 연결이 단절되면,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가?”라는 불안이 바로 생김




� 이 상태의 핵심 구조는 다음과 같음:


[존재] →

시간 위에 펼쳐져야 함 ↓

그러나 시간은 무의미하고 위협적임 ↓

[존재]는 고립되고 →

[노력]은 의미를 잃음 ↓

그 결과: 회피, 해리, 도피욕구, 정서 단절



웃긴 소리다.

무슨 2차원 캐릭터도 아니고

시간을 넘나드는 멀티버스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소리인가?

또 찌릿거리는 것이 진짜로 미래로 점프하고 싶어 한다.

평소에는 이 감각을 잘 느끼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로 방어를 하고 있나 보다.

딴생각이든지 음악이든지 유튜브던지.

그것을 위한 초점 흐리기,

멍 때리기, 부교감활성화일수도 있다.


지금 나는 내 존재와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다.

연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좋아해 주는 사람, 아껴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고생한 나에게 줄 수 있는 보상도 없다.

좋아하는 것이 별달리 없다.

지금 감정에 휩쓸려서 펜을 놓으면

나중의 나에게 미안해지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뿐이다.


심심함, 외로움, 무의미함, 무가치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지금 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래를 확실히 바꿔놓을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고립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변명하고 있을 뿐이다.

할 수 있으니까 해낼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세상과 접촉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나는 미숙하여 사람들 사이에 끼려고 노력하는 순간

느껴지는 열등감과 부러움이 너무 고통스럽기에

직업이든 장점이든 취미든 뭐라도 꾸며내서

사람들 사이에 끼기로 결정했다.

그걸 위한 공부다. 그걸 위한 운동이다.

그걸 위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참 힘들게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매일매일이 똑같았다.

그런 보상 없고 변함없는 하루들에

나는 나에게 언젠간 달라질 거라고 했다.

그러니 조금만 이 시간을 꾹 참으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 상황을 보면

도와줄 거라고도 나에게 말해줬다.

하지만 친척들, 친구들, 선생님들, 경찰들

쉼터 등 무엇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행위는 부모귀에 들어갈 위험과

구설수에 올라갈 위험만 커지는 행위였다.


고진감래라고 이 순간이 배움이 될 것이고

무언가 나에게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몇십 년간 책만 읽어서 얻은 지식들은

특정상황에서만 쓸모 있었고,

100번 읽은 책도 머릿속에서 희미했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며 놀다가

학원에서 몇 시간 공부한 걸로 시험성적이 비슷해졌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는 이 순간의 슬픔만이 남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바뀌면 취급이 달라질 거라고도 말했다.

난 말투도 고치고 표정도 꾸며냈다.

배우지 않은 것을 곁눈질로 익혀 사람들을 대했다.

하지만 미움받지 않을 뿐이지 가까워질 수 없었다.

무엇을 더 고쳐야 할지 무엇은 괜찮은지

구분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열심히 알아보고 두려움을 극복해서

경찰에 신고하고도 방임당했고,

돈을 써본 적이 없어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인체실험을 당한 뮤턴트 같았다.

구해는 냈는 데 이미 때를 놓쳤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엄청나게 힘든 세월을 잘 버티지 않았냐고.

하지만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세상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겨우겨우 흉내 내고 있었다.


나도 나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하게 자란 아이들이

나보다 더 인내심 깊고 다양한 것을 알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좀 더 안정적인

멋진 꿈을 꾸는 훌륭한 어른들로 자라났다.

별것 아닌 일에 코끝이 찡해지는 나는

나에게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았다.

나는 거짓말쟁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내가 배우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음을.

나는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듯이

나를 어르고 달래 가며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칭찬하고 보상을 주며

언젠가는 달라진다고 말해야 했다.


그렇다 내 안에는 두 개의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애쓰고 바뀌지 못하는 미래의 나와

바뀐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미래의 나.

그리고 난 행동해야한다.

좌절하게 만드는 전자를 부정해야 한다.

과거의 노력은 어디 갔냐고,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냐고

바뀔 수 있는 것 맞냐고

물어보는 현실적인 나를 혼내야 한다.

지금부터 노력하면 바뀐다고 귀에 대고

외쳐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속여야 한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처럼,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뭘 하든 현실감각을 꺼버리는 것을 익혔으리라.

그래서 어릴 때부터 책을 중간부터 읽던지

잘 보고 있던 유튜브를 스킵해서 결말만 보던지

넷플릭스 시리즈를 한 시간 만에 보는

과정을 무시하는 행동을 반복했구나.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행동들을 멀리하기 위해

정말 노력해 왔구나.

해리와 부교감신경계 향진

일명 저 각성상태가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쩌지,

나 내가 너무 불쌍한 것 같아.

어떡하지,

내가 한 말 중에 지켜줄 수 있는 건

물기를 닦아주는 것 밖에 없어.

정말 외로웠겠구나.

정말 힘들었겠구나.

정말 애썼겠구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이슈조차

그토록 애써서 흐려버리고자 했던

지나온 시간들 일 것이다.


막막하구려.

걸어도 닿지 않았던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향해야 한다는 굴레가.

무의미감으로 발걸음을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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