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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Kim Nov 18. 2015

시골 소녀는 역시 시골, 자연이 좋아

Camping in Big Sur, CA 2015

3달이나 지나서 쓰는

big sur,

내 생애 첫 캠핑 일기

Big Sur은 내게 참 특별한 곳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캠핑을 간 장소이고, 광활함과 아름다움에 빨려들어 5일을 지냈던 곳이다. 한국 사람들도 말하면 한 번에 알아 듣지 못하는 장흥 시골 소녀 답게 역시, 도시로 놀러 가는 것보다 자연 속으로 탐험을 가는게 정말 좋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셋째 날 저녁 산에서 바위들이 떨어져 우리 바로 2칸 옆에 캠핑장을 이용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다쳐서 아침부터 기자들과 경찰들로 붐비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자연은 자연이구나.. 생생히 기억한다. 새벽 4시쯤 정말 아무것도 없이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을 만큼 어두운 새벽, 태어나서 그렇게 큰 굉음은 처음 들어봤다.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나라는 작은 존재가 지금껏 얼마나 더 잘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 했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열심히 살지 말자는 소리는 아니지만, 뭔가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안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과감히 내려놓고, 미련가지지 않고 그 시간에 다른 부분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big sur pfeiffer beach, CA

쥴리아 파이퍼 비치는 정말.. 지상 낙원이었다. 갈매기 소리와 함께 시원한 폭포 물줄기가 쏴~ 하고 낙하하는데 뜨거운 땡볕아래서 그 소리들이 날 시원하게 해줬다. 자연보호구역으로 관광객들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이고,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파이퍼 폭포와 해변이 지상 천국처럼 보일 수 있었던 건, 사람의 손과 발이 닿지 않아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테니까..

저 멀리 고래도 가끔씩 수면 위로 올라왔는데, 나를 놀리듯이 사진기만 가져다 대면 다시 물속으로 숨어버렸다   :( 비싼 녀석들..ㅎㅎ



캠핑 하는 동안 또 정말 소중했던 시간은, 정말 노래 가사 그대로 “모닥불” 피워놓고 캠핑 의자에 빙~ 둘러 앉아 s'more 만들어 먹으면서 정말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이게 고작 비행기 타고 미국에 도착한 지 6시간 만에 일들이다. 참 나도 대단하다!


본인 S'more 알아서 척척 만들어 먹는 6살, 션! (마시멜로 굽는 중) _ 별이 쏟아지는 big sur 하늘 아래


서양 여자애들에게서 강하게 느낀 점은, 절대 남자가 본인을 약하다고 생각하는 걸 싫어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가 여자 무거운 것들을 들어주고, 좀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게 암묵적으로 깔려있는 사회적 인식인 것 같은 반면에, 이 곳은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 도와주면 오히려 무례한 상황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온 에린, 스테이시 둘 다 자기 텐트 알아서 척~ 척~ 척~ 뚝딱뚝딱 박아서 혼자서 10분만에 텐트를 쳤는데 나는.. 무슨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몰라서 결국 에린이 도와줬다.. 나도 이제 캠핑족이 되려면 텐트 치는 법부터 배워야 겠다 :(




Big Sur은


Big Sur은 캘리포니아 중심 해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Big sur이라는 이름은 스페인어 “el sur grande”에서 유래했으며, 뜻은 “the big south”, "큰 남쪽이다."

_여기서 스페인어 grande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붙이자면, 2012년 겨울, 시골에서 올라온 나는 파스쿠찌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도시여자인척 해보려고 열심히 주문을 했으나, 아메리카노 “그랜드”사이즈 주세요! 했다.. 당연히 영어일거라고 생각했고, grand도 웅장한, 큰 뭐 그런 의미니까... 아르바이트 언니가 “그.란.데. 사이즈요?” 라고 확인 사살까지 해주셨다_



미국 동부쪽에 비해 늦게 개발된 서부지역 답게, 원주민의 역사가 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가는 곳곳마다, 원주민 부족의 사진들이 안내 표지판에 있었다. the Ohlone, Esselen, and Salinan 세 부족들이 천년이상 유목생활과 사냥을 하며 살았던 흔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my friend, Sury.

big sur의 일부분은 스페인으로부터 1821년 독립을 하고 나서, 멕시코의 영토가 되었다. 그리고 1848년에 멕시코-미국전쟁의 결과로 멕시코는 캘리포니아를 미국에 양도했다. 그리고 그곳의 영토를 사람이 살 수 있는 동네로 만들기 위해 그곳에 정착한 개척자들에게는 0.6km(160acre)가 주어졌다. 그리고 지금 big sur의 유명한 해변, 산 이름들은 거의 개척자들 이름을 따온 것들이다(Comings, Gamboa, Pfeiffer, Post, Partington, Ross and McWay.)


평화롭고 따사로운.

1880년대가 되어서 골드러쉬가 흥하면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자 거주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근데 그게 고작,,, 200명의 인구와 4개의 상점, 식당 한 곳, 5대의 차, 한 곳의 호텔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이 지역은 유령도시가 되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도로가 깔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LA에서 Big sur까지 운전해서 가는데, 정말 길이 험난했다. 2015년, 지금에도 이렇게 길이 험난한데 그땐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치는 참 아름답다. 10시간 운전 내내, 옆엔 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쭉~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래서 잠이 쏟아질 때마다 중간 중간에 차에서 내려 바다 바람도 쐬고, 파도 깨지는 소리도 들으며 로드트립을 즐겼다. 운전하는 그 과정마저 정말 소중하고, 행복하고, 반짝거리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1950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전기 없이 살았다. (우와.. 불과 65년 전!)

1919년이 되어서야 Route 56의 일부분으로 big sur구간이 캘리포니아 다른 지역들에 이어졌고, 18년이 지난 1937년에 완성되었다.


캠핑 하는 동안, 나중에 여기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래? $2million 넘을걸?”

하길래 찾아봤더니 정말이다... 2천만 달러면 한국 돈으로 얼마지?? 했는데 오늘 환율로 234억 6400만원.. 그래... 여긴 다시 캠핑으로 오는걸로 하자..^^


개구리 친구, 안녕?

매 해 삼백만 명 이상이 찾고 있고, 자연의 고장으로 불리는 big sur답게, 체인 호텔이나 슈퍼, 패스트 푸드점은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다. 어쩐지... 주유소가 너무 없어서 우리도 좀 고생을 했다.



Writer, Gabi Kim, Santa Barbara,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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