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간직한 채, 지혜라는 우아한 옷을 입다.
마흔아홉의 끝에서, 오십이라는 계절을 마주하며
마흔아홉. 문득 내 나이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동안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타느라,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느라
정작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잊고 살았다.
마음은 여전히 서른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데,
세월은 어느덧 나를 '오십'이라는 문턱 앞에 데려다 놓았다.
사실 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기껍게 믿으며 살아왔다.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며 내일을 설계하는 동안
나는 언제나 청춘이었다.
거울 속의 내가 조금씩 세월의 흔적을 입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내 안의 소녀는 여전히 철없고 싶어 했고
그저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살기를 꿈꿨다.
그런데 막상 '오십'이라는 숫자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감회가 묘하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는 물리적 감각을 넘어,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어떤 엄숙한 선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십.
그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생각보다 묵직하다.
이제는 서툴다는 핑계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고,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앞선다.
하지만 가만히 지난 마흔아홉 해를 돌아본다.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들,
그 속에서 일궈낸 성취와 쓰라렸던 실패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 모든 시간은 나를 갉아먹은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더 단단하고 깊게 빚어내기 위한 고귀한 담금질이었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50대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그것은 결코 시들어가는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를 지나,
가장 아름답고 풍성하게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 가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금 삶의 설계도를 펼친다.
지금까지가 앞만 보고 달리는 '속도'의 시간이었다면,
다가올 오십부터는 삶의 결을 음미하는 '밀도'의 시간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내가 꿈꾸는 오십의 모습은 현명한 어른, 그리고 품격 있는 어른이다.
현명함이란 단순히 지식이 많은 상태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줄 알고
내 안의 소란을 스스로 잠재울 줄 아는 평온함에서 올 것이다.
품격 또한 화려한 겉치레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과
타인을 배려하는 부드러운 여유에서 피어날 것이다.
삶이 때로 나를 지치게 하고,
예상치 못한 바람이 불어와 휘청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비바람이 지나간 뒤의 땅이 더욱 단단해지듯,
내게 주어진 시련조차 나를 더 깊은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거름이 될 것임을.
그래서 나는 이제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은 느릿한 걸음으로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의 빈터에 '여유'라는 꽃씨를 심으면서 말이다.
마흔아홉의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나는 기꺼이 오십을 마주한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에서 반환점을 돌아
가장 멋진 질주를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선이다.
내 안의 소녀는 여전히 소중히 간직한 채,
그 위에 '지혜'라는 우아한 옷을 덧입는 시간.
잘 가거라, 나의 마흔아홉아.
그리고 어서 오렴, 나의 찬란한 오십아.
나는 비로소,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아는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