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라면을 좋아하세요?
"당신은 라면을 좋아하세요?"
누군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예스'이자 '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라면이라는 '음식'보다 라면을 둘러싼 '공기'를 사랑한다.
캠핑장의 새벽 공기 속에서 호호 불며 먹는 라면,
고기를 배 터지게 먹고 난 뒤 "탄수화물은 못 참지"라며 끓여 먹는 후식 라면,
휴게소 양은 냄비 속 꼬들꼬들한 라면.
그 맛은 미슐랭 셰프의 요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하지만 지난 1년은 좀 달랐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뒤돌아보니 이뤄놓은 건 안개 속에 가려진 듯 희미했다.
반면 내 생활은 전쟁터 같았다.
그러다 보니 라면은 나에게 '낭만'이 아닌 '연료'가 되었다.
좋아서 먹는 게 아니라, 그저 한 끼를 때우기 위한 생존식.
라면이란 라면은 종류별로 다 섭렵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렇게 라면 국물에 절여진 1년을 보내고 나니, 몸이 먼저 파업 선언을 했다.
건강검진 결과표의 빨간불. 나는 비장하게 선언했다.
"이제 라면은 끝이다. 내 인생에 인스턴트는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일까,
아니면 그간 내 몸에 축적된 MSG의 반란일까.
무념무상으로 흡입하던 그 라면이, 끊겠다고 다짐하자마자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하필이면 계절도 겨울이다.
찬 바람이 불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건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본능 아닌가.
어제는 남편이 끓여 먹는 김치 라면 생각에 이성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나는 지성인이다. 꾹 참았다.
눈물을 머금고 퍽퍽한 고구마와 라떼로 배를 채우며 내 인내심에 건배를 올렸다.
하지만 그 인내심은 딱 24시간짜리였다.
"아~ 라면 먹고 싶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탄식 한 마디.
그걸 놓칠 리 없는 나의 구원자, 남편이 훅 치고 들어왔다.
"끓여줄까? 양파랑 김치 팍팍 넣고 건강하게 끓여줄게. 대신 국물은 먹지 마."
어라? 야채를 듬뿍 넣으면 이건 요리잖아?
국물을 안 먹으면 나트륨도 괜찮지 않을까?
0.1초 만에 뇌내 합리화 회로가 풀가동되었다.
"콜! 몇 개 끓였어?"
"세 개! 둘이서 두 개는 정 없잖아."
그렇게 완성된 식탁.
올해 먹은 라면 중, 아니 내 인생 라면 중 손에 꼽을 맛이었다.
아삭한 김치와 얼큰한 국물(결국 몇 번 떠먹었다)!
그리고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호로록' 면치기 하는 즐거움까지.
누군가 그랬다.
맛있으면 0칼로리라고.
비록 식단 관리와 운동이 시급한 몸이지만,
이 완벽한 '한 끼의 반란'은 죄책감 대신 행복을 남겼다.
그래, 일단 오늘은 든든하게 먹고 스쿼트 한 세트 더 하는 걸로 타협을 보자.
볼록 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며 빈 그릇을 바라보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이 소소하고 뜨끈한 반란 덕분에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까지 사르르 녹아내렸다.
오늘 이 행복한 포만감이면 충분하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아니 내일의 라면(?)이 뜰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