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접속사
새벽 2시,
모니터 불빛만이 덩그러니 방 안을 비추는 시간.
1인 기업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산다는 건
가끔은 세상의 끝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을 느끼는 일과 같습니다.
출근하라고 재촉하는 상사도 없지만,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줄 동료도 없는 적막한 자유.
그 자유가 때로는 달콤한 사탕 같다가도, 때로는 목을 조여오는 족쇄처럼 느껴지는 밤이 있습니다.
오늘도 사실, 꽤 여러 번 망했습니다.
야심 차게 기획하고 밤새 편집해 올린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는 50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 퀄리티면 터진다!"라고 확신했던 제 근자감이 민망해지는 순간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며칠을 공들여 소싱한 스마트스토어 상품이 막 반응이 오려나 싶더니
도매처에서 "품절"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알림이 뜹니다.
고객 문의 게시판에는 "배송 언제 되나요?"라는 글이 쌓여가는데
저는 죄인처럼 사과 문자를 돌려야 합니다.
심지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2시간 동안 작성한 블로그 글이
임시 저장 오류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을 때.
그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모니터 속 하얀 백지가 저를 비웃는 것만 같습니다.
이럴 때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육두문자... 아니,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아, 진짜 못 해 먹겠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달콤하게 속삭이는 순간입니다.
이불 뒤집어쓰고 넷플릭스나 보다가 잠들고 싶은 충동이 일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마다 제 마음속 서랍 깊숙한 곳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냅니다.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법의 접속사입니다.
이 여덟 글자는 신기하게도 상황을 180도 뒤집는 힘이 있습니다.
낭떠러지 앞에 선 저를 다시 안전한 평지로, 아니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움닫기 판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조회 수가 폭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을 만들면서 컷 편집 속도는 저번보다 확실히 빨라졌다. 다음 영상은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상품 소싱이 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품이 팔린다는 데이터는 얻었다. 덕분에 더 안정적인 공급처를 찾아야 할 확실한 명분과 기준이 생겼다."
"글이 날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 초고는 남아있다. 다시 쓰면 군더더기는 빠지고 훨씬 간결하고 좋은 글이 나올 것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이 접속사를 붙이는 순간, '실패'라는 단어는 '과정'이라는 단어로 치환됩니다.
얼굴 화끈거리는 '망한 썰'은 훗날 내 브런치나 유튜브를 채울 귀중한 '콘텐츠 소재'로 변모합니다.
마케터나 크리에이터에게 나쁜 경험이란 없습니다.
아직 글로 옮겨지지 않은 생생한 에피소드만 있을 뿐이죠.
빅터 프랭클은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용소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네 일상도 매일이 작은 전쟁터입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알고리즘, 변덕스러운 시장 상황, 갑자기 튀어나오는 오류들.
이 모든 외부 환경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 해석의 권한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습니다.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딩까지 하는 시대라지만, 저는 감히 단언합니다.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만큼은 AI가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요.
오류가 나면 멈추는 기계와 달리, 상황이 최악이어도
꾸역꾸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자"며 똥고집을 부리는 건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아닐까요.
그 비합리적인 의지가 결국 혁신을 만들고, 기적을 만들거라고 봅니다.
우리가 대단한 위인이라서 이 말을 쓰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뻔뻔해지기 위해서 씁니다.
현실은 시궁창이어도, 이 말 한마디면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날 명분이 생기니까요.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릴 용기를 얻으니까요.
오늘 하루,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나요?
생각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아 조바심이 나나요?
괜찮습니다.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 또 무언가를 시작할 겁니다.
새로운 상품을 찾고, 새로운 글을 쓰고, 새로운 영상을 찍겠죠.
인생이라는 꽤 멋진 반전 드라마는 항상 이 접속사 뒤에서 시작되니까요.
오늘 밤은 저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타주려 합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망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