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유효기간
가끔 거울 속의 저를 보며 묻습니다. "너, 정말 재미없게 늙어가는 거 아니니?"
솔직히 고백하건대, 지금의 저는 상상력이 멸종된 화석 같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며, 효율성만 따지는 어른이 되어버렸죠.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탓일까요.
하지만 제게도 세상을 말랑말랑하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저는 진지하게 제가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인이라고 믿었습니다.
밤하늘을 보며 "언제쯤 우리 별에서 나를 데리러 올까?"라며 짐짓 고독한 척을 하기도 했죠.
친구들과 놀 때는 제가 '세일러문'이었습니다.
주문을 외치면 정말로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보자기를 목에 두르면 슈퍼맨처럼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된 듯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는 중력의 법칙 따위는 없었습니다. 오직 가능성만 존재했죠.
그런데 반백 살이 된 지금, 제 머릿속은 너무나 건조합니다.
밤하늘의 달을 보면 "달이 참 밝네" 대신 "내일 날씨는 맑겠군"이라고 생각하고,
초능력 대신 "카드값 결제일"을 떠올리며 초조해합니다.
마법 소녀가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내일 오를 주식 종목이나 스마트스토어의 정산 금액이 더 현실이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나이와 상상력은 반비례한다고 말합니다. 주름이 늘어날수록 상상력은 줄어들고,
그 빈자리는 '현실 감각'이라는 딱딱한 돌덩이가 채우는 게 인생의 이치라면서요.
하지만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어른이 되면 상상력 따위는 분리수거함에 버려야 하는 걸까요?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해주는 건 결국 '적당한 상상력'이라는 활력소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조금 다른 반항을 해보려 합니다. 나이에 비례해서 상상력이 줄어드는 게 순리라면, 저는 그 순리를 거스르는 철없는 어른이 되어보겠다고 말입니다.
비록 예전처럼 보자기를 두르고 옥상에서 뛰어내릴 순 없겠지만, 다른 상상을 해봅니다.
'내가 쓴 글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 매대에 깔리는 상상',
'내 강의를 들은 누군가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상상',
'1인 기업가로 대성공해서 노트북 하나 들고 하와이 해변에서 일하는 상상'.
어릴 적 허황된 상상이 저를 영웅으로 만들었다면, 지금의 구체적인 상상력은 저를 꿈꾸는 청춘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물리적인 나이는 50이지만, 마음속 상상력 나이는 여전히 세일러문을 꿈꾸던 그 시절에 머물러도 되지 않을까요?
현실의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어도, 머리는 가끔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녀도 괜찮습니다.
상상력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같은 어른들이 남은 인생을 더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해 꼭 챙겨 먹어야 할 비타민이니까요.
나는 오늘 밤,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워봅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팍팍한 현실을 용서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