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 것 같은 내 운동화

소중한 사랑과 배려

by 가비야

신발장을 열면 굽 높은 구두는 가뭄에 콩 나듯 박혀 있고, 온통 운동화 아니면 굽 낮은 단화뿐이다.


나는 일 년 365일 중 360일은 운동화를 신는다. 구두를 신는 날은 강의가 있거나 결혼식에 갈 때,

즉 '예의'라는 가면을 써야 할 때뿐이다.


내 신발 고르는 기준은 확고하다.

예쁜 것? 브랜드? 다 필요 없다.

무조건 편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발 사이즈보다 한 치수 큰 것을 고른다. 발가락이 어딘가에 꽉 끼여 옴짝달싹 못 하는 느낌이 질색이다.

신발 안에서 발가락이 꼼지락거릴 수 있는 그 헐렁한 자유가 좋다. 어쩌면 이것부터가 얽매이기 싫어하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내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헐렁한 운동화를 신고 나는 매일 전투적으로 생활한다. 하루 종일 걷고, 서 있는다.

상식적으로 내 신발은 먼지 투성이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관에 놓인 내 운동화는 늘 뽀얗다. 마치 오늘 막 상자에서 꺼낸 새 신발처럼.


우리 집엔 우렁각시가 산다. 아니, '우렁신랑'이 산다.

결혼하고 십수 년이 지났지만, 나는 운동화 솔질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어? 신발이 좀 더러워졌네?"라고

인지하기도 전에, 신발은 이미 깨끗하게 세탁되어 베란다 건조대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내 것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의 꼬질꼬질한 운동화도 어느새 주말이면 말끔해져 있다.

남편에게 신발 세탁은 일종의 의식 같다.

더러워진 밑창을 빡빡 문지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밖으로 나도느라 정신없는 아내를 타박하는 대신, 그는 묵묵히 아내가 내일 또 힘차게 뛰어다닐 수 있도록 가장 낮은 곳을 닦아놓는다.

내가 세상과 부딪히며 옷에 흙탕물을 튀기고 돌아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하얗고 뽀송한 운동화가 나를 기다린다. 발을 쑥 넣었을 때 느껴지는 그 쾌적함. 한 치수 큰 신발이 주는 넉넉함 속에 남편의 배려가 공기처럼 채워져 있다.

가끔 삶이 고단해서 주저앉고 싶을 때,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그 하얀 운동화를 본다.

아무 말 없이 "오늘도 잘 다녀와"라고 인사하는 따뜻한 손길 같다.

그 깨끗한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 또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밖으로 나간다.

내 발은 자유롭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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