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유 회사가 인스타그램에 B급 왕자님을 데려온

빙그레우스가 증명한 '세계관'과 '페르소나'의 힘

by 가비야

◇사진출처.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투게더 아이스크림.

이름만 들어도 친숙하고 정겨운 국민 기업 빙그레.


그런데 몇 년 전, 이 점잖고 오래된 식품 회사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정체불명의 게시물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순정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빨간 머리 왕자님이 바나나맛 우유 모양의 왕관을 쓰고, 메로나 모양의 지팡이를 든 채 치명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의 이름은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자칭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란다.

​처음엔 사람들도 당황했다.

관리자가 해킹을 당한 건가?

담당자가 퇴사 직전에 무리수를 둔 건가?


​하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기획된 마케팅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수많은 대중이 이 B급 감성의 왕자님에게 열광했고, 자발적으로 빙그레 왕국의 신하를 자처하며 댓글 놀이에 빠져들었다.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회사는

왜 뜬금없이 만화 캐릭터를 데려온 걸까?


제품이 아닌 '세계관'에 초대하다

​빙그레의 고민은 명확했다.

브랜드가 너무 오래되어 젊은 세대에게 올드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흔히 기업들이 하는 방법는 "우리 우유가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습니다!"라고 제품의 스펙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빙그레는

제품 대신 페르소나(Persona, 가면이나 캐릭터)를 내세웠다.


자기애가 넘치지만 어딘가 허술한 빙그레우스 왕자, 그리고 그를 따르는 투게더, 비비빅, 붕어싸만코 등 자사 제품들을 의인화한 캐릭터들이 모여 '빙그레 왕국'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바나나맛 우유를 단순한 간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빙그레 왕국의 이야기를 즐기며, 그 세계관에 동참하는 일종의 '놀이'로 받아들인 것이다.


스펙을 자랑하면 그저 고객이 되지만, 매력적인 세계관을 주면 열성적인 팬이 된다.

빙그레우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완벽하게 증명했다.



​1인 기업가, 나만의 '부캐'를 기획하라

​스마트스토어를 열거나 블로그, 유튜브를 시작하려는 1인 기업가에게 빙그레우스의 성공은 아주 중요한 힌트를 준다.


​자본도, 인지도도 없는 1인 기업이 대형 브랜드와 똑같이 "내 물건이 제일 싸고 질 좋아요"라고 외치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는 물건을 팔기 전에 먼저 나라는 사람의 페르소나, 즉 캐릭터를 팔아야 한다.


​반드시 그림을 그려서 만화 캐릭터를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매력적인 '부캐(부캐릭터)'를 설정하라는 의미다.


​무조건 솔직하게 실패담을 공유하는 동네 형 같은 사장님.

직접 한 달 동안 써보고 별로면 절대 안 파는 깐깐한 리뷰어.

편의점 신상만 보면 마케팅 심리를 뜯어보는 덕후 마케터.


​이런 확실한 콘셉트와 캐릭터가 잡혀 있으면, 고객은 물건을 사러 오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찾아오게 된다.


​유튜브 생태계만 봐도 그렇다.

구독자들은 유튜버가 전하는 정보 자체보다,

그 정보를 전달하는 유튜버의 성격과 말투,

즉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느껴서 구독 버튼을 누른다.

​오늘 당장 스마트스토어 이름이나 블로그 닉네임을 다시 들여다보자.

그저 그런 뻔한 이름과 딱딱한 소개글 뒤에 숨어 있지는 않은가?

내 비즈니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당신만의 '빙그레우스'는 어떤 모습인지 고민해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