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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여사 Aug 14. 2024

중독에서 회복으로 가는 길

GA 100일 잔치 소감문

도박중독자가족모임 Gam-Anon

갬아넌은 중독성 도박자 가족들의 모임으로 정신적인 원칙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도박중독자가족모임 Gam-Anon의 목표

1. 12단계 프로그램을 실천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하여

2. 중독성 도박자와 살아가기 위하여

3. 중독성 도박자를 이해하고 용기를 주기 위하여

4. 또 다른 중독성 도박자의 가족을 돕기 위하여


위 내용의 출처는 매주 회합에서 읽고 나누는 갬아넌 교본과 <하루하루에 살자> 책자입니다.



잔치 소감문

GA(익명의 도박중독자 자조모임)에서는 단도박 100일이면 100일 잔치, 단도박 1년이면 1년 잔치... 이런 식으로 합니다. 잔치의 주인공 협심자協心者(중독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는 뜻)는 자신의 고백이 담긴 소감문을 발표하고 그 옆자리에 앉은 가족도 소감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정여사의 소감문


1. 저는 도박 중독에 대해 무지했고 무지한 만큼 무모했습니다. 


아들이 앓고 있는 도박이라는 병에 대해 제대로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빚을 갚아주지 않은 단호한 대처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도박을 끊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왜 저러는지 정말 알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왜 그런 거짓말로도 모자라 범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도박병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박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도박을 상대로 싸우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바닥 체험'은 도박 중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힘으로, 내 나름대로 했던 노력이 아들이 도박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저항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도박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싸워야 하는 상대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허용해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병에 걸렸으면 응당 그 병으로 인한 후유증과 통증이 남아있다는 자연스러운 이치를 외면했던 겁니다. 밀쳐내고 부정한들 병이 순순히 떠나가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도. 도박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취약한 게 요즘 젊은이들인데 그게 내 아들이라고 해서 이상한 일도 억울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병이 완치는 아니어도 잠재울 수 있는 병인 것처럼 저의 불안도 끊어낼 수는 없어도 잠재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2. 내가 낳고 내가 길렀다고 해도 아들을 제대로 알 수는 없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자식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자식이라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도박병의 증상 중에서도 특히 거짓말은 화나고 아파서 상처로 남는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한동안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인연을 끊고 멀리 도망가 살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다 큰 성인인데 혼자서 못 살 이유도 없을 거고,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차라리 눈앞에 엄마가 없으면 정신을 차릴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들로 방관하고 방치하는 동안 아들의 병은 깊어지고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제 탓은 아닙니다. 아니라고 하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탓하게 되는가 봅니다. 말로는 내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꾸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에 끌려다니고 니다. 이런 자책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병에 대한 항체도 조절력도 없는 환자를 방치하면 안 되는 건데, 누군가 도와줘야 하는데 몹쓸 병에 걸린 아들을 나 몰라라 했던 게 마음 아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료와 회복은  환자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거니까.


3.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박이라는 병을 싸워서 이기려고 떨쳐버리려고 했을 때는 힘들기만 했는데, 도박을 평생 동반해야 할 질환으로 받아들이고 관리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GA와 갬아넌을 통해 도박병을 잘 관리하며 사는 분들의 '생생한 증거'를 직접 보고 들으니 안심되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이구나!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지금 이 순간 웃을 수 있으니 행복하구나!


끝으로 10년을 방황하다 다시 피난처에 찾아든 저의 母子를 따뜻하게 맞아준 GA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회복의 여정을 걷고 있는 아들뿐만이 아니라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앞날에 희망의 빛이 깃들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은 매주 GA 회합에 가고 저는 매주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모이는 Gam-Anon 회합에 가고 있습니다.

돈 들이지 않고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치료, 익명성과 비밀이 보장되는 집단치료의 현장으로.

아직도 가야할 길 중독에서 회복으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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