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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달 Sep 20. 2024

prologue

종달새의 새벽은 평온하다

"엄마는 잠 안 자요?"


보통 애들은 밤 9시면 잠들어 다음날 아침 7시쯤 일어났는데, 어렸을 때 아들이 한 말이다. 자고 일어나도 엄마는 늘 깨어있어서 이상했나 보다. 그때는 엄마는 잠을 자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다.



"넌 공부 언제 했냐?"


생각지 않게 입시에 턱 하니 붙으니 부모님이 놀라셨다. 장남만 신경 쓰고 딸은 안중에도 없으셨나. 집은 좁았는데 한솥밥 먹는 식구 외에 친척, 손님이 많았다. 3대가 한 집에 사는 장손집에서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일찌감치 이불 뒤집어쓰고 자고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고 학교에 간 것.



"당신, 어디 갔었어?"


새벽미사드리고 오는 길, 동네 한 바퀴 크게 돌고 있을 때 남편은 일어나 있거나 아니거나. 외출한 흔적을 용케 찾아낸다. 평생 맞춰보려고 해도 맞춰지지 않는 게 같이 눕고 엇비슷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두 사람, 불만이 없어졌다. 더 이상 문제될 것도 없다. 남편은 삼십삼 년째 올빼미, 나는 종달새!

엽서그림 By momdal


비바체.


세 아이 올망졸망할 때는 '빠르게' 살았다. 모든 일에 속도를 내야만 했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 숨을 헉헉 댔다. 그럴수록 '나만의 시간' 갈증 났다. 쉼표 없이 계속 도돌이표로 살아야 하는 건 음악도 아니고 삶도 아니다!



8분 쉼표.


애들 재우면서 같이 잠들던 시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만의 시간' 그런 게 사치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자투리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새벽에 일어나서 챙겨야 할 일도 줄었다. 눈꺼풀이 내려앉는 밤은 짧게 막을 내렸어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새벽은 길고 여유로워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비례해서 16분 쉼표에서 '8분 쉼표'로. 8분 쉼표에서 '4분 쉼표'로 늘어났다.



안단테.


이탈리아어 andare는 걸음걸이 빠르기라는 뜻, 거기서 안단테가 나왔다고 한다. 숨을 헉헉대지 않 만큼 쉼표가 늘다 보니 리듬도 생겼다. 앞만 보다가 옆도 보고 고개 들어 멀리보게 되었다. 시선을 멀리 두면 둘수록 '나만의 시간'이 학장 되었다. 걷는 정도의 속도 안단테 자연스럽고 부담이 없다. 소나타나 교향곡의 제2악장, 느린 악장처럼 사뿐 거리는 느낌마저 든다.




아다지오.


제일 먼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떠오른다. 현악기와 오르간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슬프면서 아름답다. 느리고 힘이 빠진 것 같아도 절정에 이르면 가슴이 트이고 시원해진다. 마법이다. 카타르시스다.


난해한 삶, 이해하기 힘든 일들 속에서 '나만의 시간' 슬픈 곡조는 갇혀있던 눈물을 끌어내 온몸을 타고 흐르게 만든다. 이럴 때 나는 잠시 동안이지만 사는 것이 견딜 만 해지고 덜 힘들어진다.



온쉼표.


한 마디 네 박자를 충분히 쉬어주리라. 아무리 현란한 악보에도 쉼표는 빠질 수 없다. 쉼표가 쉼표처럼 자리 잡아야 곡이 풍성해지지 않던가. 일상도 쉼표가 없으면 정신이 무너지는데 이때 박자를 잘 지켜야 한다. 쉼표가 너무 짧아도 늘어져도 바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적당한 긴장감이 활력을 만들어 주지 않던가. 나는 이런 게 참 좋다!


엽서그림 By momdal






첫새벽 잠깨어 불을 쓰고 앉아있으면 어두움과 고요함이 스며들어 나를 깨운다. 현실에서 벗어나 그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지에 다다른 초연함이 있다. 이때 '나는 이미 충분하다'를 증명받는다. 더 이상 애쓸 것 없어 편안하다.




첫새벽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찌 다 읊으랴. 오늘도 종달새의 아침은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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