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드넓고 고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허공처럼 걸림 없고 지극히 고요한 그곳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고요함의 지혜>
크레센도.
비가 그치자 여름이 밀려난 자리에 가을이 들어앉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해진 아침, 창밖 거리의 사람들은 겉옷을 걸치고 있다. 나도 겉옷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는다. 방은 아직 어둡고 고요하다. 홀로 앉아 읽고 쓰고, 때로는 멍하니 있는 것 등등의 맛을 아는 이상 이 맛을 놓칠 수가 없다.
해가 뜨고 분주한 일상이 펼쳐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과 마음의 속도 점점 빨라지고 움직이는 소리도 커지기 마련이다. 크레센도가 되고 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의 고요는 사라지고 수천 가지의 자극들에 쫓기고 문제들이 끼어들어 복잡해진다. 소리가 커지고 템포가 빨라지기 전에 하루를 살아낼 고요를 담자. 오늘 해야 할 일을 점검해 보면서.
엽서그림 By momdal
데크레센도.
요가강사인 친구가 세 번째 겪는 나의 오십견을 걱정한다. 그러면서 어깨가 말리고 몸이 구부정하다며 알려준 동작이 있다. 어깨를 펼쳐서 하늘을 보며 가슴을 열어주라는 건데 이게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스트레칭이란다. 잠 깨어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친구가 고맙다.
동네에서 잘하기로 소문난 정형외과 의사가 알려준 것보다 효과적이다. 상대에 대해 깊이 알고 깊이 애정하는 만큼 '적절한' 처방이 나오는 것이겠지. 의사는 얼굴 쳐다보지도 않고 그러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정작 내 통증이 얼마나 힘든지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고 그런 환자 중에 한 명이었을테니까.
벌써 세 번째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질병은 약한 곳을 파고드는 것 같다. 약한 부분을 채우고 보상하려는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겠지. 마음도 그렇다. 마음은 더 그렇다. 취약한 곳을 파고들어 아픔을 가중시키고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아픔을 다스리고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누적될수록 '면역력'이 생긴다. 여전히 새로운 문제가 터지고 새롭게 아파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가는 연속이겠지만.
'삶의 면역력'이 아픔 자체를방어하지는 못해도 강도는 점차 작아지게 한다. 어려워 들볶이고 속 끓이던 아우성이 점차 작아지는 데크레센도다.
엽서 그림 By momdal
점점 커지기도 하고 점점 작아지기도 하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잘 살피는 하루가 되기를. 몸은 바쁘게 움직이되 마음은 한가하게!
돌아와 다시 이 자리에 앉게 되면 나는 고찬근 신부님의 이 문장을 떠올릴 것이다."하루를 마감할 때, 사랑을 위해서 오늘 내게서 빠져나가 없어진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기뻐할 줄 아는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 중에서